호주 기독 대학교 칼럼
직장에서 한 분이 다른 직원에게 “너 OCD(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충동적 강박 장애)야”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분은 그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이 아니었고 다만 그런 성향이 조금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어서 그 말을 들은 직원은 웃으면서 넘어갔는데 나중에 뒤에서 들리는 말이 그 말을 들은 직원이 기분이 나빴고 화가 많이 났다고 했습니다. 물론 화가 난 것은 자신이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병명으로 진단받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직장내의 농담의 종류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정신 질환을 다루는 직장에서는 정신 질환과 관련된 농담을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농담이든 특히 정신 질환과 관련된 농담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고 그것으로 상대방에게 꼬리표처럼 달아서 표현하는 것은 큰 상처가 되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정신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자신의 질환으로 인해서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려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됩니다.위의 예에서 처럼 건강한 사람도 정신 질환의 이름으로 평가를 받으면 상처를 받을 수 있는데 하물며 정신 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은 상처에 노출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에는 힘이 있어서 부정적인 말은 회복과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연약한 사람의 삶을 좌절시키는 것에 많이 사용되어집니다. 사실, 우리 모두 대부분은 조금씩 질병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걱정 근심이 많은 사람들은 불안 장애와 연관이 있습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감정 간헐적 폭발성 장애와 관련이 있을 수 있고 또 과거의 상처와 관련된 감정과 기억을 자주 생각한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잘 믿지 못한다면 강박 장애나 편집증적 성격 장애와 관련이 될 수 있고 잠을 잘 자지 못한다면 불면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이랬다 저랬다 급하게 변하는 사람은 다중 인격 장애와 관련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조금씩은 병적인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기에 TV에서 특정 질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마치 나도 그 병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이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비슷하게 의과 학생들 중에서는 ‘하이포콘드리 증후군( Medical Student Syndrome: 의과학생 증후군, 질병 심리학 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함)’을 자주 경험합니다. 이것은 다양한 질병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마치 자신도 그 질병에 걸린 것처럼 느끼는 현상을 말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증상과 질병에 대한 정보가 함께 어울러져 신체 증상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보니 질병의 가능성을 과도하게 생각하게 되어 생길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도 대부분 일시적이고 학습을 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조금 있다고 해서 모두가 불안 장애이며 분노 장애이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가지고 있는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 연약한 부분이 다를 수 있고 그래서 스트레스 상황에서 드러나는 증상들이 다를 수 있는데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 증상이 아주 심하게 되고 일정 기간 유지되어질 때 그리고 그것이 일상 생활을 하는데 그리고 사람들과 관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생기고 주관적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러움이 클 때 그 때 정신 질환의 병명으로 진단을 하게 됩니다. 요즘 인터넷에는 자가 검진 도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단 그 도구들을 통해서 나의 증상들을 점검해 보는 것은 유용하고 도움이 되는 과정입니다. 상담사로서 저도 그 도구들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은 어디까지만 참조만 할 수 있는 도구들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유투브를 많이 보고 심리와 관련된 책을 많이 보았기에 왠 만한 정신 질환은 다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하게 공부해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타인을 쉽게 질환으로 진단하는 지식으로 삼는다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스스로가 진단을 해 보았을 때 어떤 질환이 의심이 된다면 의사를 통해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 후에 자신의 질환을 진단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확한 순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상담사로 일하는 저도 마음으로 아주 명확한 진단명이 보이는 경우라 할 지라도 함부로 진단하진 않습니다. 정신 질환이 의심되어질 때 의사 선생님을 통해 좀 더 정확하게 진단을 해 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정신과 의사들이나 임상 심리학자가 진단을 내릴 때 사용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DSM – 5 (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5th edition)으로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만든 것입니다. 이 편람은 정신 질환에 대한 정의, 진단 기준, 증상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ICD- 11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11th Revision) 입니다. 이것은 세계 보건 기구에서 만든 것으로 질병 및 건강상태를 세계적으로 분류하고 기록하는 국제적인 표준 시스템으로 정신 및 행동 장애의 분류와 진단 기준을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명확한 진단 기준을 알지 못하고 대략적인 증상만으로 쉽게 사람의 질환을 진단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신 질환의 이름으로 함부로 농담을 하거나 사람이름처럼 부르는 것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 옆집에 정신병 있잖아! ‘ 라고 말한다면 여기에는 두 가지 잘못된 표현이 있습니다. 정신병이라는 말은 정확한 질환의 명이 아닙니다. 지금은 조현병이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정확한 질환명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질환명과 사람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환명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병의 이름이지 그 사람이 아닙니다. 정신질환의 회복을 위해서는 희망을 놓치 않는 것이 중요한데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질환을 가진 사람과 그 질환을 가진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정신 질환자들도 치료를 적절하게 받으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과 우리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조금 다른 것 뿐임을 기억하며 조화롭게 배려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호주 카리스대학교에서 트라우마 가족치료의 대가인 최광현 교수님을 모시고 7월 14일 부터 일 주일간 트라우마 가족치료 자격증 과정을 진행했다. 강의 속에는 다양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누어졌는데 갑자기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성인이 된 이후 상담을 공부하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다루게 되었을 때 가장 큰 아픔으로 여겨졌던 상처였는데 치유를 받은 후에 기억조차 가물가물 해졌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지금의 나를 보면서 한 사람의 성장에 있어서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가족안에 있는 트라우마에 대한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건강한 가정은 질서가 잘 세워져 있어야 한다. 독일의 유명한 가족 치료사였던 헬 링거는 독일의 많은 트라우마로 인해 깨어진 가정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가족 세우기’라고 하는 기법을 창설하였다. 이것은 가족 치료의 기법 중에 하나로 가족의 대리인들을 통해 가족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의 질서를 이해하기 위해 가족의 질서를 깨뜨리는 요인을 살펴보자. 그것은 소속감, 애착의 결여, 주고받음의 공평성이다. 소속감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구이다.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원하고 사춘기 아이들은 또래 그룹에 소속감을 느끼기 원하고 호주에 이민을 온 사람들은 호주 사회안에서 소속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더 큰 사회에서 소속감을 누리기 위해 가장 기본인 가정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못할 때 깊은 외로움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한국인 가정 중에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할 때 한 부모가 아이들을 자기 편으로 삼아서 혼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이민 사회에서 이것이 장기화되면 언어적으로도 문화적으로 장벽이 생겨서 더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래서 아이들이 십대가 되고 더 독립적으로 되면 외로움의 깊이가 심해지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생긴다. 가족의 질서를 세워 나간다는 것은 그 가족 안에서 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애착이다. 애착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유대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양육자와 돌봄을 받는 자와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애착을 잘 형성한 아동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그 어떤 어려움을 삶에서 경험하여도 그것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데 가족의 질서가 깨어지고 특히 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거나 한 쪽 부모가 정신 건강의 이상이 있어서 충분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 아이는 애착이 불안정하게 형성이 되고 그것은 나중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애착의 불안정은 소속감의 부재로 이어지게 되고 외로움과 고립감이라고 하는 이슈를 갖게 한다. 그것은 가족이라고 하는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는 체계안에 있지 못하게 하고 외로움의 문제를 가족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찾게 만드는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게 된다. 주고받음의 공평함을 살펴보자. 가족의 질서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하고 자녀는 자녀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질서가 깨어진 가정에서는 자녀가 부모의 역할을 하거나 한 부모가 과도한 기능을 하는 역할을 하고 한 부모는 저 기능을 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녀를 편애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편애를 통해 형제 간의 갈등이 유발되고 형제 순위가 존중받지 못하게 되는 질서가 깨어지는 모양도 있다. 또 부부 중 한 사람은 전체를 통제하고 한 사람은 순응자로 살아갈 때 이것도 주고받음이 공평하지 못해지는 모습으로 이어져서 아이들에게도 그것이 이어지면서 가족의 질서가 건강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질서가 깨어진 가정에서는 트라우마가 발생하는데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면 자녀가 부모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막힘이 있을 때와 관계 가운데 얽힘 (bonding)이 일어날 때다. 부모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막힘의 부분이 나로 하여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 기억은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고 싶어서 엄마를 따라갔는데 좇아오는 딸을 기쁨으로 맞이한 것이 아니라 시장 바구니로 사정없이 내리 치면서 쫓아내어 서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오랜 세월동안 거절감과 버림받음의 감정, 수치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연결되었다. 부모에게 다가가는 것이 차단되어지는 경험할 때,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지 않게 되고 눈치를 보면서 불안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지 필자는 막내 아이를 낳을 때까지 과거의 나는 사랑을 받지 못했 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깊은 곳에 버림 당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부모가 이성적으로는 사랑한다고 알고 있어도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바로 부모에게 다가갔을 때 차단되어진 경험이 기여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번째는 얽힘이다. 얽힘은 다양한 상처로 인한 묶음일 수 있는데 그것이 해결이 되지 않아 잘못된 문제의 패턴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고 상처들이 점점 더 증폭되어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찍 잃어버린 자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편안하게 누리는 삶을 살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속죄심리 같은 것도 묶임이 될 수 있고 몇 대에 걸쳐서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고 비슷한 감정들이 전수되어지는 것도 얽힘으로 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과 같이 전쟁의 역사가 있는 곳에서는 얽힘 들이 많아서 세대를 흘러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지속되어 나타나는 것들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제주도와 같이 역사적으로 트라우마가 많은 곳에서 자살과 정신 건강의 문제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일까? 최광현 교수님은 그의 이론적 강의에서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과 배려라고 한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먼저는 누군가의 이해와 공감과 배려가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 전쟁 이후 수많은 군인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생겨 났는데 그들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모아서 그룹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그룹 치료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 공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많은 위로와 변화를 가져오는 시작점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서로 공감 받고 배려 받는 경험을 통해서 깊은 위로와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다음으로 관점의 변화가 가족의 트라우마를 해결할 수 있다. 그 관점의 변화는 상처 치유와 치료를 통해 나의 트라우마를 객관화 시켜서 바라봄으로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관점의 변화를 혼자서 가져오기는 쉽지가 않다. 특히, 트라우마의 깊이가 더 할수록 혼자서 객관화 시킨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문제를 객관화 시키기 위해서는 종종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치료사의 전문적 도움을 통해서 공감과 배려를 경험할 뿐 아니라 드러난 문제 속에 숨겨진 문제를 객관화 시켜서 보게 될 때 관점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가족의 트라우마는 한 개인의 삶에 또 대를 이어서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기에 기회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치유와 회복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에게 많은 기대를 하게 됩니다. 나의 필요를 가장 가까운 배우자가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갈망이 배우자에 의해서 채워지면 좋을 텐데 현실은 많은 배우자들이 충분하게 그 필요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했는데도 많이 외롭다고 느끼고 채워지지 않은 마음으로인해 힘든 분들이 있습니다. 한 여성분이 임신을 했는데 남편이 정서적 지지를 해주지 않는 부분에서 너무 마음이 어려워 임신 중에 더 이상 이 남편과 살 수가 없겠다 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결국, 출산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채로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어집니다. 또 한 여성분은 교회 사역자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너무 바빠서 자신과 함께해 줄 시간이 없는 것을 보고 너무 힘들어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남편과 커피 한 잔 마시고 브런치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인데 그러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여성분들이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고 남편의 정서적 지지를 바라는 부분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이 여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남편들은 이기적이고 덜 성숙한 그리고 부족한 배우자여서 그런 것일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비슷한 유형의 배우자를 만난 것 같은데 잘 지내고 왜 어떤 사람들은 비슷한 유형의 배우자를 만나서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살아갈까요? ‘부부 문제의 갈등은 이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라고 한 가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재정적인 부분이 가끔은 부부 두 사람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도 있고 어려움을 이겨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어려웠는데 갚자기 큰 빚이 생겼다거나 재정적으로 힘든 일이 생기면 그 어려움이 더 심해질 수가 있는가 하면 두 사람의 갈등이 심하지만 한 쪽이 아주 큰 재정을 가지고 있을 때 참으면서 회복을 위해 더 노력을 해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의사소통 방식, 기질, 사회적 관계, 습관, 직업능력, 성 문제같은 다양한 부분이 관계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부분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나 부부 관계에서 중요한 작용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인 애착 유형입니다. 애착 유형이라고 하는 것을 들어본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에 성인 애착 유형 검사라고 검색을 하시면 누구나 무료로 된 검사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애착 유형은 어린 시절 부터 이어져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충분한 사랑과 안정감을 경험하지 못했을 때 아이들은 불안정 애착을 갖게 되는데 성장하면서 해결되지 않으면 어른이 되었을 때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그 불안정 애착을 여전히 가지고 불안정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 애착의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의존하는 경향 혹은 회피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또 감정적인 불안정성 때문에 사랑을 받고자 하는 갈망과 동시에 거부당할 것에 대해 두려워하며 갈등을 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낮은 자존감과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그러면, 불안정 애착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불안 애착, 회피 애착, 혼란 애착의 유형이 대표적입니다. 불안 애착형은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관계에서 불안과 불확실성을 많이 경험합니다. 상대방의 관심을 갈망하면서도, 그들이 떠날까 봐 걱정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들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상대방의 반응을 과도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유형의 사람들은 배우자의 과도한 애정 표현과 지속적인 확인을 요구하며,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얻지 못하면 불안해합니다. 상대방의 태도나 행동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회피 애착형은 감정적으로 거리 두기를 선호하며, 타인과 가까워지기를 꺼려합니다. 이들은 자기 보호적인 경향이 강하고, 감정 표현을 억제하며, 관계에서 독립성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배우자와의 감정적인 연결을 피하려 하며,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필요할 때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타인의 도움이나 의존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혼란 유형은 혼란스러운 행동을 보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 유형은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움을 겪으며, 두려움과 갈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두려움과 갈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방에게 의존하면서도 그들의 거부나 배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워 합니다. 타인에게서 도움을 받기보다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의 예에서 나온 두 여성은 남편이 정서적 필요를 채워주지 않아서 힘든 이유가 남편이 자신의 정서를 지지해 주지 못하는 부분보다 어쩌면 자신은 불안 애착형이어서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확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녀의 배우자가 회피형의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집착하고 사랑을 확인하려는 배우자가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어서 할 수만 있으면 접촉을 피하고 더 많이 감정적으로 거리두기를 하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안형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안정형의 애착 유형 배우자와 만났을 때 결혼 생활이 더 안정적으로 변해갈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불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불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실제로 더 많습니다. 정서적 수준이 서로 비슷하게 떄문입니다. 그렇기에 ‘왜 배우자가 나의 정서를 지지해 주지 않지?’라고 배우자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혹시 배우자에게 너무 지나친 기대와 의존을 하고 있진 않은 지를 확인하고 서로의 유형에 따른 각자 다른 감정적 요구와 방식에 맞추어 타협과 균형을 이루어 나가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서로의 애착 스타일을 이해하고, 적절한 의사소통과 상호 존중을 배워서 관계를 다시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다고 배우자를 원망하기 전에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결정입니다.
아동기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경우 사람을 잘 신뢰하지 못한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권위자이면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트라우마를 경험했기에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외롭고 또 트라우마의 고통을 잊기 위해 사람을 찾지만 사람들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하고 여러가지 중독에 노출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고통을 잊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에게 조차 마음을 잘 열지 못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고 불편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을 대할 때는 그들에 대한 이해함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하게 대응을 받지 못한 트라우마의 희생자들은 또 다른 트라우마에 노출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성적 학대를 당한 개인은 심리치료사에게도 성적 피해를 입을 위험이 높다. 이는 이들에게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싫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 돌봄이나 배려와 같은 친밀함과 성관계가 혼동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적절하지 못한 태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 신뢰를 하려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공개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보인다면 자신의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 타인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으로 여기고 마음을 열고 나누지 않게 된다. 아동기 트라우마 생존자 상담이라는 책을 쓴 Carolyn Knight이 그의 책에서 이런 예를 들려 준다. 한 아버지가 자신의 큰 딸에게 오랫동안 성적 학대를 했는데 그것을 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작은 딸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되어 여동생이 정신 병원에 수용되었다. 트라우마로 인해 언니도 상담을 받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는 큰 딸인 언니에게 “왜 알리지 않았나요? 만약 알렸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동생은 감옥에 갈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성적 피해자로 있었던 언니에게는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이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정신과 의사는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언니에게 비난을 할 경우 성적 피해를 당한 것도 모두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성적 학대의 회복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트라우마의 생존자들의 현실 감각을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무효과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적절치 못한 태도는 트라우마의 공개에 대해서 불신하는 것도 포함이 된다. 예전에 이런 경우가 많았다. 아빠나 오빠가 딸, 또는 동생을 성 학대 했을 때 그것을 엄마에게 이야기 하면 너는 왜 거짓말을 하냐고 하면서 성학대의 경험을 축소하거나 불신하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경우 생존자는 깊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에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을 돕는 자들이 그들을 공감적으로 경청해주면서 그들의 피해 사실과 관련된 감정에 대처하는 것을 잘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개인적으로 그들이 이럴 것이다라고 하는 개인적인 판단은 쉽게 내려서는 안된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먼저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자아 존중감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연결해서 그들이 어려움이 그들 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고유한 경험을 인정해 주어서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진정 도움이 된다. 필자도 상담에서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랫동안 한 것이라고는 그 사람의 경험을 공감해 주고 괴로와 하는 감정에 카타르시스가 일어나도록 도와주고 자아감을 회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는 일을 했다. 너무나도 자신을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그 내담자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서투르지만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주위에 보면 겉은 멀쩡한 성인으로서 살아가지만 어린 시절에 큰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대하면 뭔가 모가 난 것처럼 여겨져서 조언을 하게 되고, 나아가 고치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들의 경험을 인정해주고 그들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는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불편하고 힘이 들어서 그들을 멀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그들을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 지를 알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에서는 공감을 해주고 그 이상의 부분에서는 내가 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분들에게 소개를 해줌으로 그들이 지속해서 또 전문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계선을 잘 지키는 부분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면 만나지 않거나 불편해할 가능성도 많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연 사람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나누고 싶어한다. 그럴 때 내가 도울 수 없는 부분까지 나아가면 탈진이 올 수 있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당한 생존자를 피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공감이라면 공감을 해주고 그 이상의 일은 전문가를 연결해 주어서 충분한 치료를 받도록 지혜롭게 잘 권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나도 탈진에 빠지지 않으면서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고 동시에 그 생존자도 좋은 도움을 통해 회복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트라우마를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람도 그것을 잘 극복하면 회복 탄력성을 통해 더 큰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혼자서 청소를 하기엔 너무나 넓은 집이어서 가족들을 모두 모아서 함께 가사일을 나누어서 하기 시작했다. 청소도 나누어서 하고 식사 준비도 나누어서 했다. 그러다 시드니로 이사를 오면서 집이 훨씬 작아졌고 혼자서 청소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청소는 나의 일이 되었고 설거지를 하는 것도 빨래를 하는 것도 점점 혼자서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오랫 만에 김치까지 담게 되었는데 김치를 담근 다음 날부터 손목이 욱씬 거리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다음 날 일어나 밀려있는 설거지를 잠시 멈추고 손에 파스를 붙이고 잠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적정함을 다시 되찾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기가 쉽다. 성경 말씀에도 사람이 다 한 가지로 치우쳐져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치우치지 않는 것만 잘 배워도 사람들은 제법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라고 말을 하는 것은 쉽지만 사실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나 용기를 내어서 시도를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치우치지 않는 것이 필요할까? 첫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의존해서도 지나치게 독립적이어서도 안된다. 적절한 경계선을 긋는 것이 중요한데 생각보다 쉽진 않다. 친한 사람들이 자꾸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부탁할 때 그것에 ‘아니요’ 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젊은 시절 필자만 해도 친구나 아는 지인이 부탁을 하면 거절을 잘 하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정이 있어도 함께하는 일정이 있으면 내 개인 일정은 미루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해야할 일들이 밀려나고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또 외로움이라고 하는 것이 찾아와서 그 감정에 우울함이 찾아왔고 그것은 삶을 즐겁지 않게 만들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가치를 찾는 어리석음이 내게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사람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잘 잡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은 나와의 관계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건강하게 사랑하고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타인과의 관계에 너무 목을 매지 않게 된다. 관계에 너무 모든 것을 걸 필요가 없는 것은 그 관계도 삶의 전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나의 존재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과 소망은 어디에 있는 지를 아는 것에 있고 그것을 향해서 나아가다 보면 나와 비슷한 가치와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시간 사용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을 두는 것에 시간을 많이 사용한다. 너무나 즐겁고 좋아서 컴퓨터 게임에 시간을 한참이나 사용하게 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서 잠을 자지 않고 사업 계획을 짜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고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재미있는 컴퓨터 게임을 하더라도 학교는 가야하고 공부는 해야한다. 성공을 위해 프로젝트를 계획하더라도 잠도 자야하고 먹을 것을 먹어야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해 공부를 하더라도 친구들도 가끔은 만나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필자는 언젠가 정부에 학교를 등록해야 하는 과정에서 해야할 서류가 많다 보니 24시간 꼬박 잠을 전혀 자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보니 정신없이 했는데 그 일이 있은 후에 ‘이명’이 가끔씩 생기는 증세를 경험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건강을 돌보는 일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그것을 놓침으로 인해 몸에 무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시간을 사용해야 하지만 그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지켜야 하는 균형이 있다. 잠을 위한 7시간에서 8시간 그리고 운동을 위한 30분에서 한 시간, 매끼 식사를 위한 시간, 가족들을 위한 시간, 내면의 성장을 위한 작은 시간 등은 바쁘고 급한 일이 있어도 꼭 지켜져야 하는 균형이다. 이런 시간들이 일상을 건강하게 만들고 건강한 일상은 장기적인 삶의 성공과 균형으로 이어지게 한다. 세번째로는 수용과 변화에 있어서 균형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이혼 숙려 캠프에 한 여성 분이 나왔다. 프로그램에서는 그 분을 천사 같은 분이라고 표현을 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술 중독에 무직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요구하는 것을 잘 들어주고 일도 열심히 하는 착한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남편을 있는 모습 그대로 다 수용한다고 해서 그 남편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편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는 것이 남편으로 하여금 술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 남편에게는 때로는 단호하게 ‘변화’를 요구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반대로 변화만 요구하는 배우자가 있다. 사사 건건 잔소리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고 하는 배우자와 살아가는 또 다른 배우자는 숨이 막힌다. 이런 경우, 관계에서 자유로움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관계는 건강하게 유지되지 않기에 필요한 것은 ‘수용’ 이다. 수용과 변화에 있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지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을텐데 학자마다 의견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교류 분석에서는 수용의 부분이 변화 보다 두 배로 많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부부 관계를 많이 연구한 가트만 박사님은 수용의 부분이 변화의 부분보다 더 많아야 한다고 설명을 하고 버지니아 사티어는 수용의 부분이 8이며 변화의 부분이 2정도 여여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보면 변화를 요구하는 것 보다는 수용의 부분이 더 커야 관계에서는 균형을 이룰 수 있음을 보게 된다. 부부 관계 뿐 아니라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도 이것은 적용이 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 보다 “사랑해. 너는 있는 모습 그대로 소중해” 라는 말을 더 많이 해야한다는 결론이다.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부분은 이것 뿐 아니라 종교 생활, 재정 사용,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것들이나 균형이 깨어져 버리면 그것은 중독이 되어져 버리고 삶을 삼켜버리는 독이 된다. 그러므로, 나의 삶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면서 한 쪽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은 없는 지, 치우쳐 있다면 “바빠서 할 수 없어!” 라고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위해 무엇을 내려 놓아야 하는 지 무엇을 더 해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균형있고 적정한 삶을 추구함으로 삶에 기쁨과 건강이 넘쳐 나시길 바란다.
사람들은 내적 맹세를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다. 첫번째 경우는,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딸은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한다. “ 아버지가 잘 생겨서 바람을 피우는 것 같으니 나는 못생긴 사람을 만나야 겠다.” 또는 “나는 절대로 바람을 피우지 않을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 고 말이다. 두번째 경우는 화를 잘 내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딸은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절대로 화를 내는 사람과는 결혼을 하면 안되.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나는 견딜 수 없어. 무조건 부드러운 사람과 결혼해야해”. 세번째 경우는 술 중독에 빠진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아들은 또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을 거야. 나는 결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말이다. 네번째 경우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어떤 사람은 “나는 완벽해 지지 않으면 안돼, 완벽하게 잘 해야 야단을 듣지 않는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어” 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고백 속에는 고통스러운 상처로 인해 ‘내적 맹세’ 를 하는 부분이 들어 있다. ‘결코, 절대로 ‘~’을 하지 않겠다 또는 하겠다’ 라고 하는 맹세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으면 이런 내적 맹세를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런 내적 맹세는 부모가 걸어온 잘못된 길을 가지 않게 도와주는 순 기능이 있는가 하면 그 안에는 융통성 없는 경직된 사고 또는 왜곡된 사고를 하게 만드는 역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 중에 못 생긴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있다. 즉, 못생긴 사람과 결혼을 하면 바람을 피우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왜곡된 사고다. 아주 잘생겨도 감정적이며 바람을 피우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예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부드러운 사람과 결혼해야해 라고 생각할 때 자칫 잘못하면 그 부분이 너무 커 보이기에 다른 조건들을 보지 않게 될 수 있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부드러운 사람들 중 유약하고 회피하기를 잘 하는 사람들도 있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는데, 부드럽다는 것만 강조해서 본다면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 예는 어떠한가? 술 중독에 빠진 부모님 밑에서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을 거야 라고 한 맹세가 지켜지지 않을 때 큰 좌절에 빠져서 술 중독에 자신이 빠지게 되거나 또는 술을 마시는 배우자가 중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이 비난하거나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일, 또는 과민하게 반응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네 번째 예도 예외는 아니다. 실수를 하지 않고 완벽해야 해 라고 생각하다 보니 매사에 예민하게 되고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기대치가 높아지고 자신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면 화를 내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배우자에게도 자신의 완벽한 기대를 요구하다 보니 배우자는 숨이 막히게 되고 힘들어 지게 된다. 상담이론에서는 이런 내적 맹세를 인지 왜곡의 한 가지로 해석을 한다.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불편하거나 마음이 아픈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과 함께 인지 왜곡을 발달시키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에 상처가 많고 인지 왜곡이 심하게 형성이 되어질 경우 그것이 성장기에 심각한 성격적 결함을 가져오게 할 수 있다. 그 왜곡이 만성화 되고 굳어져 버리게 되면 성격 장애로 발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심각하게 왜곡된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관계에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외로운 사람이 된다. 젊은이들이 성인과 소통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 중에 하나가 어른들의 사고가 굳어져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면서 또 예의나 기존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젊은이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려는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꼰대’라고 하는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꼰대 라는 표현은 본래는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젊은이들이나 학생들이 사용하던 은어였지만 지금은 구태의여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속어로 변형이 된 말이다. 바로 유연한 사고가 아닌 내가 가진 사고가 옳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타인에게 가용할 때 대화가 어렵게 되고 세대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으로 노년까지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지 왜곡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의 사고를 점검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는 건강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아이가 상처를 입었을 때 그것을 상처로 남겨두어 왜곡된 사고로 이어지지 않게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상처를 건강하게 잘 해석할 수 있도록 대화를 통해 부모는 아이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네 탓이 아니야 !‘ 라는 말로 말이다. 이미 어른이 된 사람은 스트레스나 가슴 아픈 일이 생길 때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과 아픔을 나누어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상담사를 통해서 상처의 아픔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평소에 자신이 믿고 있고 따르고 있는 것이 무조건 다 옳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어떤 인지 왜곡이 있는 지를 살펴보고 경직된 사고를 하지 않기 위해 피드백에 대해서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이 좋다. 더불어 고립된 삶이 아니라 사람들과 자주 어울려서 그들의 피드백을 적절히 받아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가 소통을 하는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이 계시다. 필자에 비하면 몇 십년이나 많으신 그 분은 소통이 참 잘 된다. 어떤 때는 그 분의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생각이 젊으시고 타인을 배려하시고 열려 있으시다. 그래서 그런 지 그 분은 혼자되셨음에도 불구하고 늘 옆에 그 분을 챙기는 친구들이 많고 가족들이 많다. 건강하고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은 세대차를 극복할 수 있으며 나이가 들어도 주위의 사람들과 화평하며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가능함을 그 분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 차가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왜곡된 인지가 경직된 사고 패턴이 관계의 어려움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성윤리에 대한 강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신기하게도 전화기에 동성애에 관한 동영상이 떠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인 입장과 성경적인 기반을 이야기해서일까? 사람들의 소리를 다 듣고 있는 AI 전화기는 어느 새 관심있는 분야의 동영상을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 같다.그 동영상은 게이로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 말년에 에이즈에 감염이 되어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돌보고 있는 한 기독교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의사 분이 돌보는 사람들은 에이즈로 인해서 뇌의손상이 와서 마비가 되신 분도 있으셨고 치매가 오신 분 또 항문 질환으로 고생하는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병원에서 죽어가는 그 환자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의사 선생님이 인터뷰로 나눈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게이들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서 싸운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병에 걸려 누워있는 환자들을 방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거의 모두가 성관계를 통해 감염이 되는데 동성애와 에이즈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면 동성애자들을 차별한다고 언급을 못하게 합니다. 좋은 면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동영상에서 나온 나이가 70이 넘으신 분의 말이 또한 여운에 남았다. “십 대 때 남성을 좋아하게 되어서 그 길로 계속 갔습니다. 카페에서 노래를 했고 다른 남성을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에게 동성애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 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제발 젊은이들을 말려 주세요. 동성애는 90%가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관계입니다.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에요. 후회해요” DSM-4 정신 장애를 진단하는 편람에서 이전에는 동성애를 성죽독의 일환인 질환으로 분류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신 질환이 아닌 정상적인 또 다른 제 3의 성으로 여져지고 있고 법적으로도 그들의 권리가 보호될 뿐 아니라 이제는 그들의 성 정체성을 전환하는 것을 돕는 상담이 금지되어진 상태다. 태어나면서 부터 동성애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동성애 유전자 연구 결과에 의해서 가능하지 않음이 드러났음에도 신체적 성이 아닌 ‘사회적 성’이라고 불리는 젠더개념의 성을 자유롭게 허락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개인적으로는 많은 의문이 든다. 특별히 사춘기의 아이들은 성적 호기심이 아주 많고 다양한 성적인 자극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시기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성적인 경험을 했느냐 또는 또래 친구와 주위의 문화를 통해서도 성에 대한 추구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시기이기에 자신을 잘 찾아주도록 격려해주고 돕는 것은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문제 행동들 예를 들면, 난폭한 행동들,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훔치는 행동들, 가출하는 것, 성경험을 하는 것 등이 사춘기에 많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 시기에는 육체적으로는 성숙한 것 같으나 정서적으로 혹은 생각으로는 미흡하고 충동적인 행동들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기이기에 성정체성에 있어서도 당연히 혼란을 느끼거나 고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만들어진 법을 어길 수는 없으나 그 아이들이 최대한 바른 삶의 결정들을 할 수 있게 건강한 어른들이 도움을 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라고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제시해 본다. 만약 아이가 청소년기에 갑자기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경우라면 서둘러 성의 정체성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성을 바탕으로 조금은 더 기다려 주고 충분한 탐색과 생각을 통해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지혜로운 어른이 , 즉 그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이 함께해 주며 청소년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확인하고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권에서는 ‘자기 결정권’이 중요한 힘을 가진다. 병원에서 때로는 좋은 치료이며 꼭 받아야 고칠 수 있는 병이라고 하더라도 환자가 그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 자기 결정권의 부분은 성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주어 이제는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까지 자신이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한 번 아이들이 결정하면 그것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말아라 라고 하고 그것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분의 자녀가 20대 이후에 동성애자가 되었는데 주위에 그 누구 한 사람도 동성애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던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교육을 잘 받은 젊은 세대들은 친구들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기에 친구에게 조차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엄마는 아무도 그 말을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너무속상해했다. 한 번 만 더 생각해 보라고 누구라도 이야기를 해주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젊은자녀들 둔 부모로서 함께 속상한 마음이 느껴졌다. 성인이 되고 나면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은 결국 아이들 스스로가 해야 한다. 그런데, 미성숙한 사춘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옵션과 선택의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릴 수 있기에 앞에 나오는 사람처럼 사랑을 좇아서 살았던 자신의 삶을 인생의 후반에 후회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른 들이 다양한 삶의 옵션과 또 그 결과들을 생각해 보게 함으로 건강한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날의 성은 ‘자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으로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향은 그 선택한 것에 뒤 따르는 결과가 반드시 있음을 우리 모두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 두 사람이 자녀를 낳지 않으면 한국은 몇 십년 후에도 여전히 건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를 낳지 않으면 한국은 정말 어느 학자의 말처럼 미래가 없게 된다.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가 점점 더 허물어진다면 인류의 미래도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염려를 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자유에 책임도 중요시 여기며 기존 사회의 질서와 전통도 소중히 여기는 시대가 되길 소망해 본다. 호주기독교대학 대표김 훈 (한국인 생명의 전화 이사장)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늦게 한다. 우리 때만 해도 20대 후반이면 늦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30대 중반이 결혼 평균 연령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이들은 오랫동안 싱글로 살아야 하다보니 옛날 보다 결혼 전 데이트나 연인관계로서의 시간을 오랫 동안 가지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특히, 성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네오 막시즘과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은 다양한 자신의 성을 구현하는데 예전과 다르게 자유로운 선택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기술의 발달 때문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거나 누군가가 소개를 해주어야지만 사람을 만났지만 지금은 앱을 통해서 외로운 사람들이 연애 대상을 선택해서 만나곤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데이트 앱에서 진지한 삶의 동반자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40% 정도가 된다고 하면 나머지 40% 정도는 캐쥬얼로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앱을 찾고 20% 미만의 정도는 성관계만을 위해서 앱을 찾는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케쥬얼 데이팅이 뭐지? 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하는데 케쥬얼 데이팅은 서로에 대한 결심이나 헌신이 없이 또 서로에 대한 깊은 친밀감이 없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잠자리까지 가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케쥬얼 데이팅을 하는 사람은 파트너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일 경우도 많다. 어떤 여성은 요일마다 만나는 대상이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또 재미난 개념이 있었다. 그것은 benefits with friends(친구 찬스)라는 개념인데 이것은 친한 친구와 성욕구의 해소의 목적으로 가끔 한 번씩 성관계를 한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다른 요구나 제한은 없고 두 사람은 그저 친구일 뿐이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모든 형태가 허락되어질 수는 있지만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가벼운 관계의 데이팅은 서로에게 책임을 요구하진 않지만 그 사람과 경험한 친밀한 관계의 다양한 경험들은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책임을 지지 않고 여러 사람과 관계를 함께하던 사람들은 한 사람에게 헌신된 그리고 그 사람과만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게되어 결혼이라고 하는 헌신된 관계를 지켜 나가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스턴 버그라고 하는 학자는 진정한 사랑의 요소로 친밀감과 열정 그리고 결심, 헌신을 이야기 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성숙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캐쥬얼 데이팅이나 성관계 만을 위한 만남은 성적 욕구를 기반으로 한 애정만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 관계는 일시적 일 수 밖에 없고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성장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친밀감은 상대에 대해 가지는 따뜻한 감정으로 서로 가깝게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에 비해 열정은 성적 욕구와 애정의 표현이며 결심, 헌신은 사랑의 인지적 요소이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헌신과 결심이 결여된 사랑의 관계를 친구와 또는 가끔 만나는 대상과 경험할 때 그 사랑은 성장하여 또 다른 생명을 낳는 것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결국, 이런 만남들이 많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결혼하는 것이 점점 늦어지고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잠시 만나는 만남을 통해 육체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누구나 장기적으로는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와 힘들 때나 어려울 때 함께 할 수 있는 대상이 있기를 마음으로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렇기에 자유로운 성 문화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접고 조금은 더 책임감 있는 진지한 데이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랑은 열정만으로 지속하기는 어렵기에 쌍방의 노력이 없이는 진정한 사랑을 느끼기가 어렵다.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릭 프롬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의 조건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그는 진정한 사랑의 기술은 쾌락에 있지 않고 자기 훈련, 주어진 임무에 충실함, 서서히 이루어지도록 기다리는 인내, 이루고자 하는 지고의 노력을 사랑의 조건이라고 설명하였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기존의 질서나 전통을 가볍게 여기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로 여길 수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문화와 전통적인 가치는 인류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건강한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가치와 부모님들의 좋은 조언들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좋은 것들을 분별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젊은이들이다. 오랫동안 전수해온 좋은 문화와 가정을 지키는 좋은 가치들은 조금은 불편해도 지켜 나가고 또 더 발전해야 할 부분들은 개혁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젊은이들이 해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자유로운 성과 동성애 및 다양한 성의 정체성이 허용되어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모든 것이 유익한 것도 아니고, 또한 생명이 되지 않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행동 뒤에는 반드시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간에 그것에 대한 결과가 뒤 따른다는 것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필자는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과거의 삶의 경험이 현재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우나 책임이 결여된 관계를 통한 사랑을 추구하기 보다 처음부터 조금은 느리고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진정하고 성숙한 관계를 향해서 성장하는 젊은이들이 되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배우자의 외도는 엄청난 상처를 남기게 된다. 배신감과 증오는 배우자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향하고 또 한 번 깨어진 신뢰는 회복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고 그 사이에서 자녀들도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교민 사회에서도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분은 배우자의 외도 이후로 배우자에 대해서 자꾸 믿지 못하게 되고 불안하다 보니 자꾸 확인을 하게 된다고 한다. 어떤 분은 배우자의 외도 이후로 관계가 계속 회복이 안되고 나빠진 상태로 남남처럼 살아가는 가 하면 어떤 분은 배우자의 외도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분명히 결혼 서약을 할 때는 배우자에게만 평생토록 성적인 순결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어떻게 해서 외도하게 되는 것일까? 한국의 한 박사 논문인 {기혼 남녀의 외도 욕구 경험에 관한 연구}에서 외도의 욕구를 총 8가지로 제시했다. 거기에는 순서대로 존경의 욕구, 매력적인 배우자에 대한 욕구, 대화의 욕구, 정서적 만족에 대한 욕구, 결혼 생황에 대한 불만족, 여가를 함께하고자 하는 욕구, 부모 사랑에 대한 결핍, 심리적 결핍이 있다. 총 8가지로 제시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외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 심리 상담 센터에서는 외도를 사회적인 요인으로 보고 유혹의 상황 증가, 대중 매체의 영향, 일상생활에서의 지루함, 배우자에 대한 성적 흥미 변화, 직업여성의 증가, 별거, 호기심과 비현실적 기대, 혼전 성 경험, 윤리의식, 성성향의 차이, 역기능적 가정의 영향 등으로 보았다. 원인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외도는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배우자를 통해 채워지지 않는 욕구라고 하는 내적인 원인을 바탕으로 외적인 환경에서 유혹이나 외도를 생각할 수 있는 형편이 되어질 때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이야기를 하면 성적 욕구가 많고 성적 충동을 잘 절제하지 못하는 남편이 아내가 오랫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에서 만난 여성과 대화를 하게 되고 대화를 하다 보니 서로 끌려서 만나게 되어 외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결혼 전에는 자신만 생각했던 아내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서는 성관계를 하기 원치 않고 자신보다 아이를 더 많이 챙길 때 심리적 결핍을 느끼는 남성이 있다. 집에서는 아이들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고 아내에게 잔소리만 듣는데 직장에 갔더니 자신을 깍듯이 선배님 이라 부르며 챙겨주는 후배가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에서의 스트레스까지 나누게 될 때 후배를 통해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안 해져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 남편은 점점 더 직장에 오래 있고 싶고 후배 랑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워지면서 그것이 어느 날 외도로 이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외도가 일어날 수 있다면 결혼 관계 안에서 어떻게 외도를 예방할 수 있을까? 외도의 원인이 다양한 것처럼 외도의 예방도 단순하게 하나가 정답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면 부부 사이에서 외도를 예방하기 위해서 서로의 욕구를 잘 이해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욕구는 채워주는 부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다. 어느 한 가정에서 한 쪽 배우자가 가정에서 밤에는 아이를 보고 낮에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식으로 엄청난 희생을 할 때 그 나머지 배우자는 행복할 것 같지만 그 배우자는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과 함께 놀아주지 않고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다고 외로워 하며 누군가를 찾을 수 있다. 외로운 배우자가 운동을 하거나 취미활동을 하다가 거기서 만난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외로움과 지루함이라고 하는 외도의 원인을 희생하는 배우자가 제공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건강한 부부는 일방적이거나 한쪽만의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필요를 표현하고 또 그것을 소통하고 배려하고 채워줄 때 가능한 모습이다. 또 한 가지 부부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결혼 이후에도 자녀 양육이나 재산 증진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줄이고 희생하는 삶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부 관계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나 시간 사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부의 활력을 위해 매일, 매주, 매달, 매년을 위한 계획들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부 사이의 친밀감을 제3자가 빼앗아 가지 않도록 소통하고 성장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 가끔씩은 부부 캠프 같은 곳을 통해 부부 관계를 점검해보고 더 나은 소통, 더 나은 윤리 의식을 부부 사이에 고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건강한 가정에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외도가 예전보다 훨씬 더 흔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가정의 중요성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잘못된 외도를 통한 삶의 만족을 추구하기 전에 나의 부부 관계를 위해서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선택이며 인류의 미래를 위한 어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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