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이후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진 질병이 주는 죽음, 합병증으로 인한 죽음, 여타 이유들로 죽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필자가 베트남의 장기비자 문제 해결차 시드니에서 2달 반가량의 짧은 기간을 보내는 동안 7명이나 되는 지인들의 부음을 받았다. 대부분 코로나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폐렴, 심장마비, 코로나 자체 증상으로 인한 죽음 등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분들의 사인에 코로나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입혔다고 의심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베트남에서 필자와 동역하던 젊은 목사의 32세 된 아내 응아 Nga가 출산 한 달 후에 코로나에 걸렸는데 폐렴과 심장에 문제가 생겨 갑자기 소천 했다. 2022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남편 타잉목사에게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아내가 숨을 잘 쉬지 못하고 맥도 거의 뛰지 않고 지금 정신을 잃고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울부짖었다. 일단 로컬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현지 의사에게 가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속히 밤 버스로 하노이 병원으로 데려오라고 했는데 험한 산길로 10여 시간 내려오는 동안 그의 아내는 코마상태였다. 한 달 된 간난 아기와 고만고만한 어린 아이들은 교회 성도에게 부탁했다. 2023년 1월 1일 새벽에 하노이에 도착해서 병원으로 갔으나 의사가 손쓰기에 이미 늦었다. 갓난 아기와 어린 세 아이들을 남기고 그 젊은 엄마는 숨을 거두었다. 산속에서 장시간 내려오면서 응급조치를 못해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이 어이없고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가슴이 미어졌다. 출산 3달 전에 온 가족을 만나 밥을 같이 먹으면서 격려하고 순산을 위해 기도해주었다. 출산하면 시골에 찾아가겠다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 사모가 코마 상태에서도 젖먹이 아기와 어린 세 아이들을 생각했다면 실날같은 생명줄이라도 잡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사망원인에 대해 의사는 명확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폐와 심장 기능의 마비였다. 코로나 후유증일 가능성을 이야기했으나 증명할 수는 없었다. 산골 오지에서 의료시설이 없어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한이 된다. 필자도 그 지역에서 초기 몇 년간 사역했었는데 죽을 고비를 두어 번 넘겼다. 병이 나면 하노이 큰 병원으로 오다가 의사를 보기도 전에 죽을 판이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별 것 아닌 병인데도 제때 손을 쓰지 못해 어이없이 죽는다. 그런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필자의 부부가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 이 젊은 타잉목사 부부는 베트남 북서부 S지역에 현지 소수민족들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됐다. 거기는 라오스 국경 지역으로서 장사꾼들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첩첩산중 오지이다. 필자 부부가 10여 년 전까지 그 곳에서 선교활동을 했지만 더 이상의 거주가 불가능해졌다. 선교사란 것과 교회 활동이 드러나게 돼서 현지 공안들로 부터 그곳에서의 거주와 활동을 더 이상 허락받지 못했다. 이 일로 인해 하노이로 내려온 필자는 베트남 성도들과 지도자들을 일으켜 새로운 선교사역을 진행할 수 있었다. 타잉목사 부부도 그런 사역자 중의 하나이다. 우리 부부가 한국 사람이면서 그 오지 산골까지 올라가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말에 감동하여 그들 부부가 그 지역 선교를 이어받겠다고 나섰다. 먼 타국 사람이 어려운 산골에서 화장실, 수도, 전기 문제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했는데 하노이에 사는 베트남 사람이 그곳에 가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냐며 그 지역 선교사로 자원했다.
타잉목사는 원래 시골 출신이라 산속 시골 생활의 불편함을 견딜 수 있었지만 아내 응아 Nga는 하노이 대도시에서 자랐기에 소수민족 마을에서의 삶을 힘들어 했다. 시간이 지나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내조를 잘해왔다. 공안들의 핍박과 어려운 일을 대할 때 욱하는 성격이 있었던 남편을 주저앉히고 편안한 미소로 안정감을 되찾아주던 지혜로운 아내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기도와 사랑으로 키웠고 성경 이야기를 해주면서 믿음의 씨를 뿌렸다. 장례식은 교인들과 동역자들, 그리고 주님께서 3년 전에 시작하게 하신 우리 신학교 교수들과 학생들이 나서서 치러주었다. 타잉목사도 여러 번 신학교에서 특강과 설교를 해주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미 잘 따르고 존경했다. 학생들의 슬픔과 충격은 말할 것도 없다. 타잉목사는 넋을 잃고 있고 갓난 아기는 젖 달라고 울고 3명의 어린 자식들은 철없이 떠들고 싸우고 그의 가정은 하루아침에 폭탄 맞은 꼴이 돼버렸다. 사랑하는 아내를 땅에 묻고 돌아온 타잉목사는 그때부터 식음을 전폐했다. 아이들은 외할머니께서 황망한 중에 돌보고 있었다. 본인도 금쪽같은 딸을 잃고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을 텐데 딸이 남긴 아기들을 눈물로 먹이고 재우고 씻겨주었다. 갓난아기가 엄마 젖이 아닌 분유는 입에 대려고 하질 않아 더 모진 시간을 보냈고 있다. 장례식 다음 날 보내온 타잉목사의 메시지를 읽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슬픔과 회한과 그리움으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게 나쁜 꿈입니까 아니면 실제입니까? 부엌에 가면 아내가 요리하다 말고 돌아보며 웃고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내를 땅에 묻고 돌아와 지금까지 제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그녀의 사진을 보며 밤을 샜습니다. 눈물이 그치질 않습니다. 땅속에 혼자 묻어두고 왔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습니다. 한 달 된 아기는 젖 달라고 지금도 숨넘어가듯 웁니다. 어린 3 아이들은 엄마 안오면 안자겠다 떼쓰고 빨리 데려오라고 웁니다. 6살 큰 아이만 엄마가 영원히 하늘나라로 간 것을 아는지 아무 말 없이 훌쩍거립니다. 저는 아내를 참 많이 사랑했습니다. 제 아내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산골로 와서 복음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산속의 삶의 두려움과 불편함과 외로움을 이겨내며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교회 일과 복음 전도를 위해 여기저기 다니는 일이 많았고 가정을 비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아내 혼자 4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교회 식구들을 살피느라 큰 고생과 희생을 감당하다가 이 산속 오지에서 순교했습니다. 이제 그녀가 떠났습니다. 주님 품에서 안식하고 있을 것을 믿고 있지만 남은 저희들은 너무도 힘드네요. 아내가 떠나고 나니 아내와 엄마라는 자리에서 받쳐주고 채워주고 공급해주던 그녀의 자리가 이렇게 컷었네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정에 아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잃은 아기가 젤로 불쌍하다는 말이 이제야 뼈아프게 저를 찔러옵니다. 아내가 한 달된 아기와 어린 자식들을 남기고 어떻게 떠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결혼할 때 몹시 가난했습니다. 아내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아내는 저와 아이들만 생각하며 많은 희생을 했습니다. 제가 교회 일에 지치고 힘들 때 힘을 주었습니다. 가난한 목사에게 시집와서 한 가정의 엄마이며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교회의 사모로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던 제 아내를 한 순간에 잃었습니다. 남은 저는 이리 아프지만 아내는 모든 고생과 육신의 아픔을 내려놓고 주님 품에서 안식하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남은 우리들은 지금부터 어찌해야 할지 목사님 알려주세요. 주님께서 우리들을 손을 잡아주시고 이길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주세요”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찢었다. 병원이 그리 멀지만 않았어도, 코로나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이동식 인공호흡기만 있었어도 하는 아쉬움만 커진다. 지금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하랴? 일단 급한 대로 병원비, 장례비, 그리고 아이들 양육비와 우유 값을 보내주었다. 우선 슬픔을 추스르고 어린 자녀들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갑작스런 고난이나 슬픔이 있을 때 곁에 있는 믿음의 가족들이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주님께서 진정한 위로와 이길 힘을 주시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그리고 교회 형제자매들의 진심어린 위로와 작은 도움도 온 가족이 다시 일어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며칠이 지난 뒤 타잉목사가 자식 하나를 입양 보내려 하는데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엄마 없는 어린 자식들 4명을 혼자 키울 수 없어 한두 명을 좋은 가정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마침 교인 중 하나가 6살짜리 큰 아들을 달라고 하는데 보내도 되겠냐고 물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양육의 어려움으로 자식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 하다니? 일단 말렸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타일렀다. 특히 6살이 된 아들은 한 순간에 엄마를 잃고 그 슬픔과 공허함으로 이미 힘들 텐데 아빠마저 못보고 낯선 가정으로 가라하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 아니냐고 했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1개월 된 아기를 보내는 게 아기와 입양 부모에게 낫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을 두고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기다리자고 했다. 아내를 갑자기 보낸 것이 절망적이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치열한 삶의 문제는 남아서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이겨낼 힘을 주님이 주실 것이다. 아이들에겐 엄마가 없는 것이 가장 힘들다. 아내를 잃고 주저앉은 타잉목사와 엄마 잃고 광야로 내몰린 듯 한 아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걸어갈 일이 2023년 새해 벽두에 큰 숙제로 주어졌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