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현장에서 호소력 회복을 위한 전도 원리 5 – 거저 주어라

이곳은 날이 갈수록 영적인 암흑이 짙어지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믿는 바를 따라 행동하는 신앙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고 핍박하는 새종교법과 그에 따른 핍박으로 선교활동과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더욱 옥죄고 있다. 한편 2023년 3월 현재 온 세상이 AI 기반의 챗GPT와 Bing과 같은 것들이 인간의 사고와 판단의 영역을 점령해가고 있다. 지난 70여 년간 발전해 온 기존 컴퓨팅 시스템의 개념과 작동 원리와 연산능력을 송두리째 바꿀 획기적인 양자 컴퓨터가 경천동지의 변혁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와 그 믿음 안의 소중한 가치에 집중하는 영적인 각성은 거꾸로 퇴보하고 있다. 성경 말씀의 인본주의적 해석, 종교다원주의로 인한 복음의 내용과 가치 훼손, 과학과 진화론을 앞세운 하나님의 창조성 부인, 성경에 근거한 절대 진리와 도덕과 윤리의 퇴보를 보면 인간의 영성이 타락해 감을 바로 알 수 있다. 지금 베트남에서는 수십 년 간의 부패사슬을 쳐내는 노력을 시작했는데 개선의 여지가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이는 부패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걸 암시한다. 종교인들의 활동과 외국 선교사들의 비자 연장을 위해 더 많은 뒷돈을 요구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여건, 즉 체류 비자를 받는 비용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힘든 과정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은 그 가치가 세상의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하지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거저로 나누어 준다. 예수님께서 거저 주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목숨으로 이미 그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 이은 예수님의 전도원리 일곱째는 거저 주는 전도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했다. 대가를 바라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12)” 라고 했다. 은혜의 복음을 대가를 바라지 말고 거저 나누는 것이 복음 전도의 원리이다. 여덟째는 믿음으로 하는 전도이다. 주님의 일과 전도를 할 때 염려를 내려놓고 믿음으로 해야 한다. 염려는 불신이고 걱정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는다, 마6:31에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했으며, 마 13:22에서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라고 했다. 염려는 사단이 뿌린 것으로 믿음을 병들게 한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눅12:11)”는 말씀처럼 권세자들 앞에서도 말할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며 전도자의 자세이다. 아홉째는 교회를 세우는 전도이다. 마10:11-13절 “영접하는 자의 집에 평안을 빌고 그곳에서 머물라.” 영접하는 자의 집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 갔을 때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에 청종했으며 그 집에서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곳이 유럽 최초의 교회가 되었다. 한국 최초의 교회도 서상륜이라는 신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병을 치료받는 중에 존 로스 선교사와 매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나 예수님을 영접했다.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던 로스 선교사는 서상륜이 그의 병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해서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기록하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치료를 받고 예수님을 믿고 매킨타이어 선교사로 부터 세례를 받았다. 회심 이후 서상륜은 로스 선교사와 함께 성경 번역을 시작했고 번역된 성경을 1883년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어렵사리 가져왔다. 그리고 고향인 황해도 소래에서 교회를 시작했는데 그 교회가 바로 소래교회이다. 주님을 영접한 자의 집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열 번째는 순결하고 지혜로운 전도자가 되는 것이다. 마10:16절의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와 같이 예수님은 전도자가 지혜롭고 순결해야 한다고 하셨다.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의 말은 악하고 독이 있어 듣는 이의 영을 죽인다. 그래서 전도자는 먼저 지혜롭고 순결해야 한다. 지혜는 고삐를 매다, 재갈을 먹인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깨어있는 것을 의미한다. 열 처녀 비유에서 깨어 있었던 다섯을 슬기 있는 자들이라 했는데 그들이 깨어 있었기 때문이다. 롬12:16에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했다. 높은 곳에 마음을 두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구약 성경부터 일관되게 낮은 곳을 보라고 말씀하셨는데, 높은 곳이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생각이다. 낮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지혜이다. 항상 깨어있어 지혜로워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순결은 순수하고 썩지 않았다는 뜻이다. 순결은 흠이 없는 것이고 순결을 잃어버리면 흠이 생긴다. 전도자는 흠이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병든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구약에서 제물로 삼은 모든 동물들은 흠이 없어야만 했다. 흠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바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순결한 마음, 썩지 않는 마음,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열매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전도자에게 이 거룩과 순결이 요구되는 것이다. 전도자가 순결하고 복음의 빛이 되는 삶을 살 때 예수님의 증인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어둠에 속한 삶을 살고 복음의 가치에 집중하지 못하는 가증하고 흠이 많은 사람을 통해서는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가 맺히지 못할 것이다.

현 시대는 정보화 시대이며 그 특징과 사회적 변화는 18세기 영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래의 삶이 어찌 변할지, 인류가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고, AI 중심의 기술이 인류사회에 어떤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한 윤리적, 사회과학적 연구가 부족하다.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으로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AI의 한계를 정하고 통제하고 리스크 관리를 하는 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과 탐욕이 이를 외면하고 있기에 어떤 미래적 재난과 비극을 초래할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세계의 영적 움직임은 우리를 더욱 심란하게 한다. 현재 최대 종교는 이슬람이며 천주교가 2위, 개신교는 3위로 전락했다. 무슬림들의 높은 출산율과 공격적인 선교로 그들은 지금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개신교와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개신교 교회는 전도의 열정과 구령의 사명을 속히 회복해야 한다. 지난 5회에 걸친 칼럼에서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전도원리와 전략 및 방법들을 살펴보았다. 전도의 근본 원리와 방법들을 원점으로 돌아가 전도의 주체이신 예수님의 전도 모범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실천하신 예수님의 전도 전략과 방법, 12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가르쳐 주신 전도 원리 10가지도 살펴보았다.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의 ‘전도와 선교 방법’이 어렵고 닫힌 선교지에서 복음이 흘러가는 길을 열고 평탄케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특별히 소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전도의 성패와 열매는 실제 전도의 현장에 뛰어드는 우리의 열정과 자세, 믿음 그리고 인간들의 미련한 전도의 현장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달려있다. 전도의 꿈이 크면 열매도 크다. 전도의 꿈과 열정과 열매는 우리의 믿음의 크기에 비례한다. 전도자의 능력은 미미하지만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크기로 열매를 거두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명령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전도를 도우신다. 우리가 전도할 때 예수님이 주신 전도원리를 늘 가슴에 담고 전도의 현장에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복음의 확산을 체험하길 바란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