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해보는 창조질서 회복 2 – 가정과 사회에서

베트남의 구정 뗏 Tet 명절의 전국적인 영향력은 막강하다. 전국이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동안 휴가와 축제 분위기이다. 음주와 향락과 소비 위주의 뗏 문화 속에서 교회 성도들에게 새해를 맞이하며 의미 있는 삶을 계획하고 새 출발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권면과 도전의 첫 번째 이었던 ‘개인의 삶 속에서’에 이어 두 번째인 ‘가정과 사회에서’의 창조질서 회복에 관한 내용이다. 먼저 가정에서의 질서 회복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 후에 2장에서 하나님이 남자 아담에게 여자 하와를 데리고 와서 사랑하게 하고 부부가 한 몸을 이루어 가정을 이루게 하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가정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도이고 가정을 통해 생육과 번성하도록 하는 창조정명과 하나님의 창조가 여성의 태를 통해 지속되도록 하셨다. 가정을 이루는 본질적 요소는 아담이 하와에게 보여주었던 사랑이다. 창2:23절에 보면 아담이 하와를 보자마자 사랑을 고백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인류 최초의 사랑 고백은 오늘 날의 것에 비해 그리 로맨틱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대가 다가와 꽃이 되어 주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와 같은 이 시대 시인들의 고백이 더 가슴 설레지 않는가? 그러나 아담의 고백은 본질적 사랑을 담고 있다. “하와씨, 그대와 나는 한 몸이요, 절대 헤어질 수 없소. 육적으로 정서적으로 한 몸이기에 누구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소” 이런 본질적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가장 심오한 사랑 고백이었다. 그리고 에베소서 5:22-33에서 이 사랑을 더 구체화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이런 말씀들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께서 가정을 제정하셨을 때 창조주로서의 의도와 섭리가 가정이란 제도 안에 들어있음을 본다. 그래서 가정에는 창조원리에 맞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한 국가의 미래를 보려면 그 나라의 가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정이 곧 그 나라의 미래이다.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을 망각한 가정은 아름답지 못하다. 가정의 본질적 사명은 사랑이다. 아내와 남편이 한 몸을 이루고 자기 몸을 사랑하듯 서로 사랑해야 한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상호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부부의 핵심 가치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시작이다. 결혼은 이제부터 사랑하며 살겠다는 약속이다. 사랑이 결혼의 동기부여를 해주었다면 결혼은 이제부터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사랑하고 아껴주고 인정하고 존경하며 살겠다고 하나님과 양가 부모님과 모든 가족, 친지들 앞에서 약속하는 것이다. 이 약속을 깨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 불이행의 죄이며,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 주변 친지들, 그리고 태어난 자녀들을 크게 실망시키는 일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부모가 가정을 깨고 사랑하지 않을 때 문제의 아이들이 생겨난다. 문제아 뒤에는 문제의 부모, 문제의 가정이 있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의 창조질서를 새해에 점검하고 회복해야 한다. 가정을 세워주시고 복이 주어지는 통로를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존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야 한다. 어리석은 부모는 재산을, 똑똑한 부모는 지식을, 지혜로운 부모는 신앙유산을 남겨준다. 혼탁한 세상에서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서 자녀들이 친구 때문에 담배 피우고 술 마시러 갔다는 핑계를 대지 않게 해야 한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자녀로 인해 친구들이 술 마시러 가려다가 모두 도서실로 따라 갔다고 하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양육해야 한다. 또한 자녀들이 가정에서 영육 간에 훈련하고 준비하여 세상으로 나아가 도전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줘야 한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상처를 입었더라도 다시 돌아올 따뜻한 가정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줘야 한다. 이런 가정을 지탱하는 초석과 기둥은 사랑이다. 이 아름다운 창조질서를 늘 기억하고 회복하여 가정의 목적과 사명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서의 창조질서 회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회와 직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번성하고 다스리는 일에 탁월함이 있어야 한다. 세상의 직장이나 생업의 터전은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투쟁하고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땅을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는 사명과 책임이 창조정명 속에 들어있다 (창1:26-28). 이는 고난과 장애물이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창의성을 가지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문제를 풀어 좋은 결과를 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주신 창의적 접근과 능력으로 공동체나 사회에 유익한 열매를 맺게 하여 번성하고 충만케 하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창조정명이다. 21세기는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융합적 사고를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한다. 그러려면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유연하고 일반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고지식하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고집스런 사고의 틀 안에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적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런 통전적 사고의 능력과 더불어 자신만의 깊은 전문성도 다른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대체불가의 예리한 전문성을 갖추고 그 전문성을 영성과 인품이라는 칼집에 잘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일도양단의 결단력으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예리한 실력을 꺼내서 들고 다니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을 베어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겸손의 칼집에 잘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과 인재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말씀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때 나오게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이 이런 창의적인 인재의 길을 걷고 있는지 연초에 한번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깨어서 돌아보지 않으면 연마되지 않는다. 좋은 습관과 자기 성찰이 영육 간에 탁월함을 부여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고 기도하는 경건의 시간은 세상으로 부터의 고립이다. 그 고립이라는 외로움을 선택하는 고독이 자신을 성숙하게 하고 영적인 탁월함을 부여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 고독의 시간 속에서 사명자인 자신을 보며 창조질서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 새해가 되면 이러한 말씀과 도전들을 베트남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치고 강권하고 있다. 반응하고 실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주어지며 영육 간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이 새로운 한해의 입구에 서서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과 사명을 회복하는 창조질서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