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성탄절이 공휴일이 아니다. 새해 1월 1일도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지나간다. 대신 뗏 Tet이라고 부르는 구정이 삶의 대 전환점이자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뗏이 되면 전국이 일손을 놓는다. 뗏 1주일 전부터 최장 3-4주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이웃과 함께 명절을 쇤다. 최북단 하장성에서 최남단 까마우성까지 예외가 없다. 정부 관공서는 물론 모든 문화, 관광, 종교, 회사, 학교, 교통, 식당, 가게 및 각종 사회단체까지 활동을 멈춘다. 하노이와 호찌민 같은 대도시는 오히려 텅 비어 죽음의 도시 같다. 돌아갈 고향이 없어 남아있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에게 뗏 기간은 역설적으로 외롭고 고립된 나날이라 본국이나 다른 나라로의 탈출을 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뗏을 삶의 전환점으로 생각하기에 직장을 옮기거나 삶의 결단이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뗏을 그 기회로 삼는다. 그래서 뗏 이후에 돌아오지 않는 직원들이 3-40%나 된다. 뗏 휴가를 보내기 전에 보너스를 주면서 꼭 돌아오라고 몇 번이나 얘기하면서 어느 날까지 돌아와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다짐을 받는다. 그러나 뗏 이후엔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아 낭패를 많이 본다. 그래서 뗏 이후에 곳곳에서 새로 일꾼을 뽑느라 난리다. 새로 뽑은 직원이 일을 배우고 정상적으로 근무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뗏 전후 한 두 달간은 생산성이 추락하고 불량률은 급격히 높아진다. 그러나 최근 4-5년 동안 베트남의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변화를 꾀하고 있다. 뗏을 지내고 일주일 후부터 일터로 복귀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 복귀율은 아직도 낮고 남들보다 일찍 일터로 돌아온 것에 대한 불만들이 많다. 공무원이나 경찰, 군인들은 할 수 없이 정해진 날에 출근하긴 하지만 일손을 놓기는 마찬가지이다. 개점휴업 상태가 한동안 지속된다.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인사하고 선물 나누고 술 마시고 하면서 1,2주일을 보내는 것이 통례이다. 필자도 선교 초기에 산골 오지에서 뗏을 소수민족들과 수년 간 같이 쇠었는데 여간 힘들고 지루한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초대하고 먹고 마시고, 이집 저집 다니며 인사하고 음식을 나누는 일에 지칠 줄을 모르는 그들이지만, 우리 부부는 힘들고 지쳐서 나중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빠지려고 노력했다. 도회지에서 돌아온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장년들은 장년들대로 어울리고, 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전통 축제와 놀이를 하기도 한다. 산골 소수민족 지역은 뗏이 농한기라 한 달간이나 명절 분위기가 지속된다. 물론 일 년 동안 모은 돈의 대부분은 뗏을 위해 쓴다. 종종 빚을 지기도 한다. 이런 소비위주의 뗏 문화 속에서 교회 성도들에게 어떻게 새해를 맞이하고 의미 있는 한해를 기대하고 계획하게 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뗏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개인의 삶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새롭게 회복해야 할 본질적 요소와 가치를 찾아 그들과 나누었다. 오늘 그 내용을 여기서 나눠보고자 한다.
첫째 개인의 삶 속에서 회복되어야 하는 창조질서 이야기이다. 창1:26-28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사명, 즉 창조정명을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 이미지대로 창조된 인간들에게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다. 다스림의 대상인 피조물에게 절하고 두려워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지 말고 주인 노릇하면서 충만하고 번성하라는 명령과 사명을 창조 속에서 주셨다. 이 창조정명을 인지하고 이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다. 자신을 창조해주신 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삶으로 사는 것이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고 왜 그 자리에 서 있는지 망각하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새해에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고 그분께서 주시는 사명에 귀를 기울이고 창조정명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삶의 목적을 잃은 자, 사명대로 살지 않는 자는 소멸되고 버려진다. 창조 목적대로 살지 못하면 아름답지 못하다. 사명을 잃은 자는 다가오는 아침이 두렵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점검하고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감동적인 사명으로 새벽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의 길을 외면하고 살려하는 게으름은 비겁한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적 정명을 무시하는 가증한 것이다 (잠언19:15, 20:4, 21:25-26, 22:13, 26:14, 26:16, 27:23, 28:19, 약4:17).
인류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면 창조 정명과 삶의 목적도 모른 채 살아간다. 자신의 임무를 모르고 사는 죄의 길로 빠진다. 방향 상실의 죄이다. 이 어지러운 세대에 내 자신이 가야할 최선의 길을 찾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죄, 사명 따라 살지 않는 게으른 삶의 태도가 그것이다. 롬14:23에서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라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창조질서로 돌아가야 한다. 인류는 지금 혼돈의 상황, 어지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2023년을 맞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가 계속되어 중국에서 수천만 명이 감염되었고 매일 수천 명씩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 주의보가 다시 내려졌다. 코로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동북아에도 전쟁의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기후 변화와 이상 기온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극단적 추위와 더위, 극단적 홍수와 가뭄 등이 반복되고, 비가 엉뚱한 곳에 많이 와서 사막에 홍수가 나고 있다. 비가 늘 내리던 곳이 사막화 되어 강과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농사를 짓지 못함은 물론, 모든 것을 삼킬 듯한 산불이 곳곳에서 무섭게 지표를 태우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인류의 소망에 대못을 박았다. 인류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도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난의 쓰나미를 바라보면서 모두가 숨죽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신앙의 위기이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모른다 하며 떠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서 조롱받고 있다. 코로나 록다운 기간 중에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들 중 상당수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 교회의 30% 이상이 문을 닫았다고 하며 기존 성도의 3-40%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교계의 발표가 있다. 이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위기이다. 다 잃고 모진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만 섬기고 추종한다면 위로부터 오는 회복과 부흥이 약속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세상엔 소망이 없다. 오늘의 세대는 혹독한 고난 속에서 헤매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큰 위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모든 잡다한 미디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 자신을 고립시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분의 계획과 목적을 다시 한 번 묻고 확인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보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과의 자발적 고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라. 그러면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게 하는 영적 각성이 위대한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깨우고 채워줄 것이다. 자신에게 불필요한 잡다한 정보들과 쓸데없는 미디어의 소리를 버리는 것만으로도 삶이 선명해질 것이다. 리더십의 최소 단위는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통제하고 리드할 수 있는 자만이 스스로를 바르게 인도하고 세워갈 수 있다. 좋은 추종자가 좋은 리더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좋은 추종자라야 훌륭한 리더가 된다. 말씀과 기도와 경건의 시간을 위한 세상으로 부터의 고립을 선택하는 시간 속에서만 창조정명의 사명자인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과 사명을 회복하는 창조질서로 돌아갈 수 있다. 이 새해 아침이 그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