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편과 함께 튀르기예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기 저기에서 온 낯선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서 7박 9일을 함께 하는 일정인데 함께 모인 사람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다. 막 결혼한 신혼 부부도 있었고 가장 나이가 많은 분들이 60대 후반의 커플이었다. 그 중에 은퇴 후 혼자서 여행을 하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일년 중에 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고 하였다. 집보다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 가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얼른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그 분의 말은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는 말로도 드렸지만 왠지 처량하게 들렸다. 혹시나 가족 관계가 편치 않아 그 고통과 외로움을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 적극적으로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분이 정말로 보듬어야 하는 것은 부딪혀야 하는 그 분의 여행이 아닌 현실의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벤트나 여행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우리에게 주고 그 시간들의 강렬하고 즐거웠던 잠깐의 기억이 일상을 또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이벤트만 하고 항상 여행만 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필자만 해도 여행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벗어 놓은 산더미 같은 빨래와 마당에는 더 이상 깎기 힘들 정도의 풀이 자라있고 해야하는 직업상의 업무들은 밀려 있으며 또 당면한 막내 딸의 수술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런 모든 일상의 일을 해 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일상을 품고 나의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태도가 건강한 모습이다. 그렇기에 이벤트나 여행을 위해 일상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잘 살아나가기 위해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적절히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아내가 죽을 병에 걸려 6개월간 병원에 있었는데, 돌아보면 그 시간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이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인의 남편인 시인 ‘나태주’는 다음과 같이 그것에 대해 표현한다. ‘난 또 다르게 생각해요. 그것도 내 인생이다. 감옥 생활을 해도 내 인생이다. 소나기에 흠뻑 젖고 되는 거 하나 없는 날도, 그 날이 내 날이다. 그날을 보듬어줘야 다음 날이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그가 휘파람 불듯 말을 이었다. ‘산다는 건… 말이지요. 매우 비참한 가운데 명랑한 거예요’ 어렵고 힘든 삶도 나의 삶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회피하여 도망가기 보다는 그런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나와 내 가족을 함께 격려하며 고민하며 함께 보듬어주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고 그것이 결국은 쾌락이 아닌 삶의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게 한다. 최근 김수현이 욕을 많이 먹는 이유는 함께 한 가까운 사람이 어려움과 아픔을 겪을 때 함께 보듬어주지 못하고 자신의 명성이나 쾌락만 좇아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지선 교수는 이화여대를 다니던 아주 총명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학생이었지만 큰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분이다. 만약 잃어버린 그 모든 아픔과 과거의 삶을 연연해 하며 현재의 삶을 품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없을 것이다. 아프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과 싸우고 또 그 현실을 기반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삶을 살았기에 지금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교수님은 사고당한 날이 자신의 제 2의 생일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상담 중 내담자가 변하지 않는 가족의 모습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엄마로서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자리를 지켜 나가길래 그 분에게 “당신은 힘들게 하는 남편 때문에 또는 자녀 때문에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셨네요. 그러니 이제는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고 이 삶은 내가 선택했어 라고 말하셔야 합니다.” 나의 고통이 외부적인 환경의 원인으로 온다고 생각하면 나의 고통은 나의 것이 될 수가 없다. 늘 나는 희생자이고 어쩔 수 없이 남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된다. 그런데 내가 겪고 있는 고통도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라고 여길 때 우리는 거기에서 힘을 낼 수 있다. 좋든 싫든 그것 만이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전도서에는 사람이 죽을 때가 있고 태어날 때가 있고 아플 때가 있고 건강할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에게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힘들다고 나의 삶을 포기하려고 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자. 오늘의 슬픔은 가까운 날의 기쁨을 예고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의 어려움은 내일의 부요함을 감사로 누릴 수 있는 축복의 도구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고통을 경험할 때 삶의 다양한 경험을 해봄으로 인간의 삶의 이해가 더 풍성해지니 그것을 성장의 도구라 여겨보자.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고 이웃까지 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일상의 행복이 주는 소중함을 놓지 않고 있을 때 간혹 경험하는 여행도 즐겁고 예기치 않은 만남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잠시 눈을 감고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 함께해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보자. 슬픔도, 기쁨도, 아픔도, 즐거움도, 고통도 모두 어우러져 나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다.”– 노먼 빈센트 필 ‘긍정의 힘’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이 ‘긍정’이라는 개념이 심리학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98년,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이 미국심리학회(APA)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을 제창했고, 이것이 심리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전까지 심리학은 주로 […]
최근 김새론의 죽음을 통해 김수현의 민낯이 드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 동안 좋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자신을 어필한 김수현은 좋은 광고를 통해서 수십억을 벌여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실제 모습은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좋은 이미지를 산산 조각나게 했다. 무엇보다 미성년인 취약한 배우들을 성적으로 추행하고 당시 15세였던 김 새론과 몇 년간이나 사귀었고, 자신의 소속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는 김 새론을 도와 주기는커녕 위협하고 유투버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서 공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확한 결론은 알 수 없지만 현재 드러난 것을 통해 본다면 그것이 김 새론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좋은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가면을 쓰게 된다. 적절한 가면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 사회적 기능을 잘 감당하게 한다. 몇 일전 여행 중에 만난 한 분은 대기업에 다니면서 최근에 은퇴를 하신 분이다. 그 분이 보이는 이미지는 아주 점잖은 선비 같았고 말씀을 하실 때도 조용 조용히 하셨다. 그런데, 그 분이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어 주기 위해 머리에 넥타이를 매고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분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역할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가면을 적절히 사용했기 때문에 은퇴까지 잘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가면이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을 많이 해치거나 가면과 가면의 차이가 너무 크면 기능을 잘 감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도 갈등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역할에 맞는 가면을 적절히 사용하되 자신의 삶의 가치를 반영한 가면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수현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고 마치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인양 사람들은 생각해 왔다. 거기에다 도덕성이 높은 이미지였기 때문에 그의 실제 모습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극도로 분노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가면과 보여지는 가면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김수현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차이를 극복하는 삶을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했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엄마를 나타내는 인형을 골라 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아주 예쁜 옷을 입은 직업 여성의 인형과 앞치마를 두른 인형 두 가지를 골랐다. 아이들은 집에 있을 때와 엄마의 모습과 일할 때의 엄마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보기에 일할 때의 모습과 집에서의 엄마의 모습이 달랐다고 느꼈기에 다른 인형을 골랐던 것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힘들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아이들에게 큰 혼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가면을 쓰는 것은 융통성이 있으며 동시에 그 기능을 잘 감당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직장에서 일할 때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누가 나무라겠는가? 오히려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더 훌륭하게 생각할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럴 때 사회에서 기능하는 다양한 모습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가면이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보아 주어야 하는 부모와 동시에 아이들을 때리거나 성학대를 하는 것과 같은 완전히 상반되는 가면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 그럴 때 아동들은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때로는 잠시 자신의 자아를 몸과 분리시켜 고통을 이겨내려 하는 ‘해리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다중 인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배우 김수현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주는 모습도 혼란이다. 그 동안 보여주었던 배우의 가면들이 너무나 완벽하게 뛰어난 모습 또는 바보같이 선한 모습이었기에 그가 총, 칼을 들고 누군가를 학대하고 괴롭혔다는 사실이 대중이 가지고 있던 그의 일관성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 가면들 사이의 차이를 줄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제일 좋은 방법은 척하면서 살지 말고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나의 모습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동시에 타인에게도 그것을 적당하게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어느 날, 돈이 들어 있지 않은 헌금 봉투를 헌금함에 넣었다는 고백을 했던 적이 있다. 큰 교회 목사님께서 성도들 앞에서 그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누군가는 목사님이 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거룩한 가면을 쓰고 있는 목사님도 일반 성도처럼 죄를 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면을 벗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도 순 기능이 있음을 기억하고, 숨기거나 열등감을 가지기 보다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된 이유를 생각하며 그런 나를 긍휼히 여기며 용납할 때 나의 가면들은 통합이 되어 나 큰 하나의 자아로 성숙해 갈 수 있게 된다. 바라기는 이번 사건을 통해 배우 김수현도 결핍이 많은 자신을 화려한 가면으로만 가리지 말고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태브나와 오뚜느는 아주 특별한 몽골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은 몽골의 두 번째 도시인 다르항 (Darkhan)에 있는 YWAM (Youth with A mission)의 대표 리더인데 아주 한국말을 잘 합니다. 태브나는 한국 선교사님이 다르항 베이스의 리더였을 때 그 분을 따라다니며 통역을 하던 스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브나가 20대 중반 밖에 안되었던 어느날, 한국 선교사님께서 갑자기 몽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큰 프로젝트를 가지고 많은 일을 진행하던 한국인 리더는 몽골 정부로 부터 추방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베이스 리더의 자리를 태브나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태브나는 너무 어리고 한국으로부터의 많은 재정적 지원으로 운영되었던 베이스였기에 새로운 젊은 리더를 재정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스텝들이 떠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베이스를 테브나는 16년 동안 성실하게 운영하면서 베이스를 지켜왔고 발전시켰습니다.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을 좋아하는 아내인 오뚜느는 다른 나라로 가자고 남편에게 조른 적도 여러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테브나는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태브나는 지역 교회도 3군데를 개척해서 교회와 베이스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지역 교회의 목사님들과도 여러 행사들을 많이 운영합니다. 필자가 잠시 머무는 동안 몽골에는 설 명절이 있었습니다. 태브나는 명절을 맞이해서 몇 일동안 어른들과 아프신 분들을 방문해서 인사하는 일을 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비전센타를 추가로 세워서 중독 사역과 언어 학교를 운영하는 비젼을 가지고 자신이 일하는 교회에서 비전센터의 기반을 쌓는 일을 위해 헌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6월 에 땅을 파게 됩니다. 그의 아내인 오뚜느는 5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오뚜느는 한국에서 국어 국문학과를 공부하고 호주 기독교 대학의 상담학과를 공부해서 상담사로 몽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시청 사무소에서 오뚜느와 상담사들에게 청소년들을 위해 상담을 할 수 있는 상담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에게 상담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다르항 베이스에도 상담실을 만들어 놓았고 또 다르항 베이스에서 독립사역으로 하고 있는 유치원에도 일 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서 어린 아이들에게 상담을 제공합니다. 오뚜느는 부모로부터 보호를 잘 받지 못하는 아동과 청소년들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상담사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올 해 부터는 호주 기독교 대학의 캠퍼스를 세우고 상담학과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캠퍼스에서 만난 상담학부의 학생들은 놀라웠습니다. 이미 석사까지 심리학을 공부하신 분, 중독 사역을 하고 계신 분이 계셨고 대부분이 선교사와 교회 지도자였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천 킬로가 떨어진 곳에서 어떤 학생은 천 사백 킬로가 떨어진 곳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다르항까지 온 분도 계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섬기기 위해 오뚜느는 숙박 비용이나 식사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식사와 아주 맛있는 디저트를 제공하고 선물까지 준비해서 주었습니다. 오뚜느와 담당 스텝들은 단순히 공부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함께 제공하고 다르항 베이스의 비전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트라는 다르항 베이스에서 14년이나 장기 스텝으로 일한 선교사입니다. 제가 14년 전에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했을 때, 19살의 DTS (Disciples Training School)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스텝으로 일을 하면서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을 위한 선교사로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할 때도 북한 선교를 기뻐하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북한 선교를 위해 온 가족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다리만 건너면 북한으로 갈 수 있는 대련이라는 곳에서 5개월간 머물면서 북한 선교를 위한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들과 연계해서 기도하면서 실제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가족은 어린 두 자녀가 있는데 북한 선교를 위해 아이들은 집에서 홈 스터디로 키우면서 북한에서는 옥수수 농장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하지 못하는 북한 선교의 일을 몽골의 선교사님이 죽음을 각오하고 한다고 하는 것이 놀라웠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쉘은 눈에 띄는 다르항 베이스의 선교사입니다. 외모가 워낙 한국 사람처럼 보이고 20대 중반이어서 어떤 청년일까 궁금했습니다. 미쉘은 한국에서 12년간 있으면서 국제학교를 졸업한 청년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처럼 한국말을 잘 하고 또 영어도 아주 잘합니다. 미쉘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비올라 대학에서 IT로 학사 공부를 하고, 몽골에 돌아와서는 최고로 좋은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중앙 아시아에 선교사로 떠나기 위해서 훈련을 받고 있는 스텝으로 YWAM 다르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미셸은 울란바트라에 살고 있는 아주 특별한 부모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쉴이 대기업을 그만 두고 또 부모님을 떠나 선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모님이 지금은 크리스챤이 되어서 열심히 아들을 돕고 자신의 집을 게스트 하우스처럼 열어 놓고 몽골을 방문하는 다르항의 손님이 있으면 따뜻하게 집에서 잠을 재워주고 공항까지 데려다 주는 일을 합니다. 미쉘의 엄마는 불교였다가 아들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7일만에 성경을 두 번이나 읽었다고 합니다. 아빠는 러시아에 오랫동안 사시던 분이어서 음식 솜씨가 아주 뛰어납니다. 필자가 하루 머물게 되었을 때 본인은 금식으로 인해 음식도 못 먹으면서 아주 열심히 러시아 음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6일밖에 없었던 몽골에서의 시간이지만 몽골의 문화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로 인해 그들과 금방 정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떠나는 발걸음에 여운이 가득합니다. 어려운 중에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 모두가 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기독교 상담자들이 많이 배출되어서 몽골의 개인과 가정 그리고 […]
14년만에 몽골에 왔습니다. 인생에 2번째 몽골 방문인데,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높은 건물들도 많이 건설이 되고 있고, 한국 CU 편의점이 곳곳에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은 무엇보다 많은 열매가 있는 방문입니다. 몽골어로 저희 호주 기독교 대학 상담학과 과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시작에 46명의 학생들이 등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2011년에 꾸게 하셨던 꿈의 결실을 보게 하는 놀라운 시간입니다. 2010년 중국 북경에서 GMS 소속의 중국 지역 선교사님들 모아서 함께 가정사역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주강사로 초대되어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님들이 상담사역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제는 복음 전파 사역만이 아니라 상담과 가정사역을 통한 회복의 사역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었습니다. 사람들을 교육하고 복음으로 무장시켜도 이전의 가정으로 돌아가면 이전의 문제상태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회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 본인들이 먼저 교육을 받고 중국 현지인들에게도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2011년 몽골의 제2의 도시 다르항(Darkhan) DTS(Disciple Training School)에서 가정사역에 대한 주제로 낮에는 DTS 학교의 학생들에게 그리고 저녁에는 현지인 목회자들을 모아 놓고 가정사역 강의를 했습니다. 그 곳에서도 상담사역의 필요성을 아주 절실히 느꼈습니다. 잠시 강의 중에 쉬는 시간에도 상담 요청이 줄을 이었고, 잠깐의 상담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하는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호주가정상담대학 산하에서 한국어 학부를 담당하던 저희에게는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 새로운 언어로 개척할 수 있는 권한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 정부에 등록된 호주 기독교대학을 통해 전세계 선교지에 기독교상담자를 배출하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하나님께서는 대학 내부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던,2021년에 일본, 몽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탈북 민을 위한 선교사님들을 위한 상담학 코스를 용기를 내어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선교사 30여명이 공부하셨고, 그 중에 몽골은 몽골 현지인 선교사 4명이 공부했습니다. 그 중에 3명이 졸업하고 이 사역에 헌신하여, 학생을 모집하고 2025년 2월 3일 대학이 개강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중에 3일 걸려서 1300km 를 달려오신 사역자님도 계시고 1000km 에서 오신 3명도 있었고, 3-4 시간은 떨어진 곳에서 오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이 사역자님들이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해하고 감사하는 그 분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힘을 내게돠고 감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부분 지도자 급이고 몽골을 이끌어나가시는 분들이어서 더 […]
많이본기사 Popular
- 현명한 투자자 20 – 투자 대가의 명언을 통해 배우는 투자 원칙 (6) 65 views
- “다 핫도그만먹는데…” 코스트코 고수들이 은근히 담아간다는 즉석음식 4가지 60 views
- 호주 기술 인력 부족과 이민 정책 조정 55 views
- 엘니뇨인데도 비 많은 겨울,이상기후 주목 53 views
- 호주 사업주 주목!7월 1일부터 연금 납부 ‘판’이 바뀐다. 44 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