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기독 대학교 칼럼

교회에서 성윤리에 대한 강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신기하게도 전화기에 동성애에 관한 동영상이 떠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인 입장과 성경적인 기반을 이야기해서일까? 사람들의 소리를 다 듣고 있는 AI 전화기는 어느 새 관심있는 분야의 동영상을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 같다.그 동영상은 게이로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 말년에 에이즈에 감염이 되어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돌보고 있는 한 기독교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의사 분이 돌보는 사람들은 에이즈로 인해서  뇌의손상이 와서 마비가 되신 분도 있으셨고 치매가 오신 분  또 항문 질환으로 고생하는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병원에서 죽어가는 그 환자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의사 선생님이 인터뷰로 나눈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게이들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서 싸운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병에 걸려 누워있는 환자들을 방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거의 모두가 성관계를 통해 감염이 되는데 동성애와 에이즈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면 동성애자들을 차별한다고 언급을 못하게 합니다.  좋은 면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동영상에서 나온 나이가 70이 넘으신 분의 말이 또한 여운에 남았다. “십 대 때 남성을 좋아하게 되어서 그 길로 계속 갔습니다. 카페에서 노래를 했고 다른 남성을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에게 동성애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 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제발 젊은이들을 말려 주세요.  동성애는 90%가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관계입니다.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에요. 후회해요” DSM-4 정신 장애를 진단하는 편람에서 이전에는 동성애를  성죽독의 일환인 질환으로 분류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신 질환이 아닌 정상적인 또 다른 제 3의 성으로 여져지고 있고 법적으로도 그들의 권리가 보호될 뿐 아니라 이제는 그들의 성 정체성을 전환하는 것을 돕는 상담이 금지되어진 상태다. 태어나면서 부터 동성애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동성애 유전자 연구 결과에 의해서 가능하지 않음이 드러났음에도 신체적 성이 아닌 ‘사회적 성’이라고 불리는 젠더개념의 성을 자유롭게 허락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개인적으로는 많은 의문이 든다.  특별히 사춘기의 아이들은 성적 호기심이 아주 많고 다양한 성적인 자극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시기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성적인 경험을 했느냐 또는 또래 친구와 주위의 문화를 통해서도 성에 대한 추구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시기이기에 자신을 잘 찾아주도록 격려해주고 돕는 것은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문제 행동들 예를 들면, 난폭한 행동들,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훔치는 행동들, 가출하는 것, 성경험을 하는 것 등이 사춘기에 많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 시기에는 육체적으로는 성숙한 것 같으나 정서적으로 혹은 생각으로는 미흡하고 충동적인 행동들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기이기에  성정체성에 있어서도 당연히 혼란을 느끼거나 고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만들어진 법을 어길 수는 없으나 그 아이들이 최대한 바른 삶의 결정들을 할 수 있게 건강한 어른들이 도움을 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라고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제시해 본다. 만약 아이가 청소년기에 갑자기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경우라면 서둘러 성의 정체성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성을 바탕으로 조금은 더 기다려 주고 충분한 탐색과 생각을 통해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지혜로운 어른이 , 즉 그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이 함께해 주며 청소년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확인하고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권에서는 ‘자기 결정권’이 중요한 힘을 가진다. 병원에서 때로는 좋은 치료이며 꼭 받아야 고칠 수 있는 병이라고 하더라도 환자가 그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 자기 결정권의 부분은 성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주어 이제는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까지 자신이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한 번 아이들이 결정하면 그것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말아라 라고 하고 그것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분의 자녀가 20대 이후에 동성애자가 되었는데 주위에 그 누구 한 사람도 동성애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던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교육을 잘 받은 젊은 세대들은 친구들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기에 친구에게 조차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엄마는 아무도 그 말을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너무속상해했다. 한 번 만 더 생각해 보라고 누구라도 이야기를 해주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젊은자녀들 둔 부모로서 함께 속상한 마음이 느껴졌다. 성인이 되고 나면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은 결국 아이들 스스로가 해야 한다. 그런데, 미성숙한 사춘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옵션과 선택의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릴 수 있기에 앞에 나오는 사람처럼 사랑을 좇아서 살았던 자신의 삶을 인생의 후반에 후회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른 들이 다양한 삶의 옵션과 또 그 결과들을 생각해 보게 함으로 건강한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날의 성은 ‘자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으로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향은 그 선택한 것에 뒤 따르는 결과가 반드시 있음을 우리 모두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 두 사람이 자녀를 낳지 않으면 한국은 몇 십년 후에도 여전히 건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를 낳지 않으면 한국은 정말 어느 학자의 말처럼 미래가 없게 된다.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가 점점 더 허물어진다면 인류의 미래도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염려를 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자유에 책임도 중요시 여기며 기존 사회의 질서와 전통도 소중히 여기는 시대가 되길 소망해 본다.  호주기독교대학 대표김 훈 (한국인 생명의 전화 이사장)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늦게 한다. 우리 때만 해도 20대 후반이면 늦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30대 중반이 결혼 평균 연령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이들은 오랫동안 싱글로 살아야 하다보니 옛날 보다 결혼 전 데이트나 연인관계로서의 시간을 오랫 동안 가지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특히, 성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네오 막시즘과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은 다양한 자신의 성을 구현하는데 예전과 다르게 자유로운 선택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기술의 발달 때문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거나 누군가가 소개를 해주어야지만 사람을 만났지만 지금은 앱을 통해서 외로운 사람들이 연애 대상을 선택해서 만나곤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데이트 앱에서 진지한 삶의 동반자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40% 정도가 된다고 하면 나머지 40% 정도는 캐쥬얼로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앱을 찾고 20% 미만의 정도는 성관계만을 위해서 앱을 찾는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케쥬얼 데이팅이 뭐지? 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하는데 케쥬얼 데이팅은 서로에 대한 결심이나 헌신이 없이 또 서로에 대한 깊은 친밀감이 없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잠자리까지 가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케쥬얼 데이팅을 하는 사람은 파트너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일 경우도 많다. 어떤 여성은 요일마다 만나는 대상이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또 재미난 개념이 있었다. 그것은 benefits with friends(친구 찬스)라는 개념인데 이것은 친한 친구와 성욕구의 해소의 목적으로 가끔 한 번씩 성관계를 한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다른 요구나 제한은 없고 두 사람은 그저 친구일 뿐이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모든 형태가 허락되어질 수는 있지만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가벼운 관계의 데이팅은 서로에게 책임을 요구하진 않지만 그 사람과 경험한 친밀한 관계의 다양한 경험들은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책임을 지지 않고 여러 사람과 관계를 함께하던 사람들은 한 사람에게 헌신된 그리고 그 사람과만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게되어 결혼이라고 하는 헌신된 관계를 지켜 나가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스턴 버그라고 하는 학자는 진정한 사랑의 요소로 친밀감과 열정 그리고 결심, 헌신을 이야기 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성숙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캐쥬얼 데이팅이나 성관계 만을 위한 만남은 성적 욕구를 기반으로 한 애정만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 관계는 일시적 일 수 밖에 없고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성장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친밀감은 상대에 대해 가지는 따뜻한 감정으로 서로 가깝게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에 비해 열정은 성적 욕구와 애정의 표현이며 결심, 헌신은 사랑의 인지적 요소이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헌신과 결심이 결여된 사랑의 관계를 친구와 또는 가끔 만나는 대상과 경험할 때 그 사랑은 성장하여 또 다른 생명을 낳는 것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결국, 이런 만남들이 많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결혼하는 것이 점점 늦어지고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잠시 만나는 만남을 통해 육체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누구나 장기적으로는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와 힘들 때나 어려울 때 함께 할 수 있는 대상이 있기를 마음으로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렇기에 자유로운 성 문화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접고 조금은 더 책임감 있는 진지한 데이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랑은 열정만으로 지속하기는 어렵기에 쌍방의 노력이 없이는 진정한 사랑을 느끼기가 어렵다.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릭 프롬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의 조건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그는 진정한 사랑의 기술은 쾌락에 있지 않고 자기 훈련, 주어진 임무에 충실함, 서서히 이루어지도록 기다리는 인내, 이루고자 하는 지고의 노력을 사랑의 조건이라고 설명하였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기존의 질서나 전통을 가볍게 여기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로 여길 수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문화와 전통적인 가치는 인류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건강한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가치와 부모님들의 좋은 조언들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좋은 것들을 분별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젊은이들이다. 오랫동안 전수해온 좋은 문화와 가정을 지키는 좋은 가치들은 조금은 불편해도 지켜 나가고 또 더 발전해야 할 부분들은 개혁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젊은이들이 해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자유로운 성과 동성애 및 다양한 성의 정체성이 허용되어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모든 것이 유익한 것도 아니고, 또한 생명이 되지 않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행동 뒤에는 반드시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간에 그것에 대한 결과가 뒤 따른다는 것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필자는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과거의 삶의 경험이 현재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우나 책임이 결여된 관계를 통한 사랑을 추구하기 보다  처음부터 조금은 느리고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진정하고 성숙한 관계를 향해서 성장하는 젊은이들이 되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배우자의 외도는 엄청난 상처를 남기게 된다.  배신감과 증오는 배우자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향하고 또 한 번 깨어진 신뢰는 회복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고 그 사이에서 자녀들도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교민 사회에서도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분은 배우자의 외도 이후로 배우자에 대해서 자꾸 믿지 못하게 되고 불안하다 보니 자꾸 확인을 하게 된다고 한다. 어떤 분은 배우자의 외도 이후로 관계가 계속 회복이 안되고 나빠진 상태로 남남처럼 살아가는 가 하면 어떤 분은 배우자의 외도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분명히 결혼 서약을 할 때는 배우자에게만 평생토록 성적인 순결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어떻게 해서 외도하게 되는 것일까? 한국의 한 박사 논문인 {기혼 남녀의 외도 욕구 경험에 관한 연구}에서 외도의 욕구를 총 8가지로 제시했다. 거기에는 순서대로 존경의 욕구, 매력적인 배우자에 대한 욕구, 대화의 욕구, 정서적 만족에 대한 욕구, 결혼 생황에 대한 불만족, 여가를 함께하고자 하는 욕구, 부모 사랑에 대한 결핍, 심리적 결핍이 있다.  총 8가지로 제시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외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 심리 상담 센터에서는 외도를 사회적인 요인으로 보고 유혹의 상황 증가, 대중 매체의 영향, 일상생활에서의 지루함, 배우자에 대한 성적 흥미 변화, 직업여성의 증가, 별거, 호기심과 비현실적 기대, 혼전 성 경험, 윤리의식, 성성향의 차이, 역기능적 가정의 영향 등으로 보았다. 원인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외도는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배우자를 통해 채워지지 않는 욕구라고 하는 내적인 원인을 바탕으로 외적인 환경에서 유혹이나 외도를 생각할 수 있는 형편이 되어질 때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이야기를 하면 성적 욕구가 많고 성적 충동을 잘 절제하지 못하는 남편이 아내가 오랫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에서 만난 여성과 대화를 하게 되고 대화를 하다 보니 서로 끌려서 만나게 되어 외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결혼 전에는 자신만 생각했던 아내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서는 성관계를 하기 원치 않고 자신보다 아이를 더 많이 챙길 때 심리적 결핍을 느끼는 남성이 있다. 집에서는  아이들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고 아내에게 잔소리만 듣는데 직장에 갔더니 자신을 깍듯이 선배님 이라 부르며 챙겨주는 후배가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에서의 스트레스까지 나누게 될 때  후배를 통해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안 해져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 남편은 점점 더 직장에 오래 있고 싶고 후배 랑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워지면서 그것이 어느 날 외도로 이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외도가 일어날 수 있다면 결혼 관계 안에서 어떻게 외도를 예방할 수 있을까? 외도의 원인이 다양한 것처럼 외도의 예방도 단순하게 하나가 정답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면 부부 사이에서 외도를 예방하기 위해서 서로의 욕구를 잘 이해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욕구는 채워주는 부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다.  어느 한 가정에서 한 쪽 배우자가 가정에서 밤에는 아이를 보고 낮에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식으로 엄청난 희생을 할 때 그 나머지 배우자는 행복할 것 같지만 그 배우자는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과 함께 놀아주지 않고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다고 외로워 하며 누군가를 찾을 수 있다.  외로운 배우자가 운동을 하거나 취미활동을 하다가 거기서 만난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외로움과 지루함이라고 하는 외도의 원인을 희생하는 배우자가 제공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건강한 부부는 일방적이거나 한쪽만의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필요를 표현하고 또 그것을 소통하고 배려하고 채워줄 때 가능한 모습이다. 또 한 가지 부부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결혼 이후에도 자녀 양육이나 재산 증진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줄이고 희생하는 삶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부 관계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나 시간 사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부의 활력을 위해 매일, 매주, 매달, 매년을 위한 계획들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부 사이의 친밀감을 제3자가 빼앗아 가지 않도록 소통하고 성장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 가끔씩은 부부 캠프 같은 곳을 통해 부부 관계를 점검해보고 더 나은 소통, 더 나은 윤리 의식을 부부 사이에 고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건강한 가정에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외도가 예전보다 훨씬 더 흔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가정의 중요성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잘못된 외도를 통한 삶의 만족을 추구하기 전에 나의 부부 관계를 위해서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선택이며 인류의 미래를 위한 어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막내 딸의 척추 측만이 너무 심해서 지난 주 금요일에 수술을 했고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척추에 심을 박는 큰 수술을 하고도 아이는 그렇게 많이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통증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링겔로 두 가지 종류의 가장 센 진통제를 계속 맞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술 후 3일째가 되자 가장 센 진통제를 끊었고 4일째가 되니 마져 다른 진통제를 […]

아는 동네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 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베풀기를 잘하고 자신의 공간도 잘 오픈하고 자신의 삶도 잘 풀어내시는 분이셨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본받을 이야기가 참 많이 있었다.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그 분을 피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 분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가면 빨리 지나쳐 버리고 그 분과 […]

가끔 살다 정신줄을 놓고 멍한 상태가 될 때가 있다.  대부분 충격을 경험했을 때다.  한 분이 얼마 전에 교통 사고를 경험했다고 한다. 교통 사고를 경험한 후 그 분은 자신의 아픔을 그 누구에게도 나누지 못했고 혼자서 이겨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고 한다. 증세는 없어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삶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불안이 많아지고 그 불안은 우울감과 함께 큰 […]

남편과 함께 튀르기예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기 저기에서 온 낯선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서 7박 9일을 함께 하는 일정인데 함께 모인 사람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다. 막 결혼한 신혼 부부도 있었고 가장 나이가 많은 분들이 60대 후반의 커플이었다. 그 중에 은퇴 후 혼자서 여행을 하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일년 중에 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고 하였다. 집보다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 가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얼른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그 분의 말은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는 말로도 드렸지만 왠지 처량하게 들렸다. 혹시나 가족 관계가 편치 않아 그 고통과 외로움을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 적극적으로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분이 정말로 보듬어야 하는 것은 부딪혀야 하는 그 분의 여행이 아닌 현실의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벤트나 여행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우리에게 주고 그 시간들의 강렬하고 즐거웠던 잠깐의 기억이 일상을 또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이벤트만 하고 항상 여행만 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필자만 해도 여행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벗어 놓은 산더미 같은 빨래와 마당에는 더 이상 깎기 힘들 정도의 풀이 자라있고 해야하는 직업상의 업무들은 밀려 있으며 또 당면한 막내 딸의 수술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런 모든 일상의 일을 해 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일상을 품고 나의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태도가 건강한 모습이다.  그렇기에 이벤트나 여행을 위해 일상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잘 살아나가기 위해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적절히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아내가 죽을 병에 걸려 6개월간 병원에 있었는데, 돌아보면 그 시간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이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인의 남편인 시인 ‘나태주’는 다음과 같이 그것에 대해 표현한다.  ‘난 또 다르게 생각해요. 그것도 내 인생이다. 감옥 생활을 해도 내 인생이다. 소나기에 흠뻑 젖고 되는 거 하나 없는 날도, 그 날이 내 날이다. 그날을 보듬어줘야 다음 날이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그가 휘파람 불듯 말을 이었다. ‘산다는 건…  말이지요. 매우 비참한 가운데 명랑한 거예요’ 어렵고 힘든 삶도 나의 삶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회피하여 도망가기 보다는 그런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나와 내 가족을 함께 격려하며 고민하며 함께 보듬어주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고 그것이 결국은 쾌락이 아닌 삶의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게 한다.  최근 김수현이 욕을 많이 먹는 이유는 함께 한 가까운 사람이 어려움과 아픔을 겪을 때 함께 보듬어주지 못하고 자신의 명성이나 쾌락만 좇아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지선 교수는 이화여대를 다니던 아주 총명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학생이었지만 큰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분이다.  만약 잃어버린 그 모든 아픔과 과거의 삶을 연연해 하며 현재의 삶을 품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없을 것이다. 아프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과 싸우고 또 그 현실을 기반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삶을 살았기에 지금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교수님은 사고당한 날이 자신의 제 2의 생일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상담 중 내담자가 변하지 않는 가족의 모습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엄마로서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자리를 지켜 나가길래 그 분에게 “당신은 힘들게 하는 남편 때문에 또는 자녀 때문에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셨네요. 그러니 이제는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고 이 삶은 내가 선택했어 라고 말하셔야 합니다.”  나의 고통이 외부적인 환경의 원인으로 온다고 생각하면 나의 고통은 나의 것이 될 수가 없다. 늘 나는 희생자이고 어쩔 수 없이 남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된다. 그런데 내가 겪고 있는 고통도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라고 여길 때 우리는 거기에서 힘을 낼 수 있다. 좋든 싫든 그것 만이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전도서에는 사람이 죽을 때가 있고 태어날 때가 있고 아플 때가 있고 건강할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에게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힘들다고 나의 삶을 포기하려고 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자. 오늘의 슬픔은 가까운 날의 기쁨을 예고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의 어려움은 내일의 부요함을 감사로 누릴 수 있는 축복의 도구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고통을 경험할 때 삶의 다양한 경험을 해봄으로 인간의 삶의 이해가 더 풍성해지니 그것을 성장의 도구라 여겨보자.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고 이웃까지 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일상의 행복이 주는 소중함을 놓지 않고 있을 때 간혹 경험하는 여행도 즐겁고 예기치 않은 만남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잠시 눈을 감고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 함께해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보자. 슬픔도, 기쁨도, 아픔도, 즐거움도, 고통도 모두 어우러져 나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항상 변치 않고 등장하는 타락과 문제 중에 중요한 영역이 아마도 성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항상 등장하는 영역임을 잘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들어내놓고 이야기 하지 않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로렌스 크랩(Lawrence J. Crabb.Jr)은 “결혼 문제에 가장 큰 첫째 원인이 ‘대화’에 있다면 둘째 원인은 당연히 ‘성(性)’문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은 결혼에 있어 […]

최근 김새론의 죽음을 통해 김수현의 민낯이 드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 동안 좋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자신을 어필한 김수현은 좋은 광고를 통해서 수십억을 벌여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실제 모습은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좋은 이미지를 산산 조각나게 했다.  무엇보다 미성년인 취약한 배우들을 성적으로 추행하고 당시 15세였던 김 새론과 몇 년간이나 사귀었고, 자신의 소속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는 김 새론을 도와 주기는커녕 위협하고 유투버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서 공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확한 결론은 알 수 없지만 현재 드러난 것을 통해 본다면 그것이 김 새론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좋은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가면을 쓰게 된다. 적절한 가면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 사회적 기능을 잘 감당하게 한다.  몇 일전 여행 중에 만난 한 분은 대기업에 다니면서 최근에 은퇴를 하신 분이다.  그 분이 보이는 이미지는 아주 점잖은 선비 같았고 말씀을 하실 때도 조용 조용히 하셨다. 그런데, 그 분이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어 주기 위해 머리에 넥타이를 매고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분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역할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가면을 적절히 사용했기 때문에 은퇴까지 잘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가면이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을 많이 해치거나 가면과 가면의 차이가 너무 크면 기능을 잘 감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도 갈등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역할에 맞는 가면을 적절히 사용하되 자신의 삶의 가치를 반영한 가면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수현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고 마치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인양 사람들은 생각해 왔다.  거기에다 도덕성이 높은 이미지였기 때문에 그의 실제 모습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극도로 분노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가면과 보여지는 가면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김수현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차이를 극복하는 삶을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했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엄마를 나타내는 인형을 골라 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아주 예쁜 옷을 입은 직업 여성의 인형과 앞치마를 두른 인형 두 가지를 골랐다. 아이들은 집에 있을 때와 엄마의 모습과 일할 때의 엄마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보기에 일할 때의 모습과 집에서의 엄마의 모습이 달랐다고 느꼈기에 다른 인형을 골랐던 것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힘들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아이들에게 큰 혼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가면을 쓰는 것은 융통성이 있으며 동시에 그 기능을 잘 감당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직장에서 일할 때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누가 나무라겠는가? 오히려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더 훌륭하게 생각할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럴 때 사회에서 기능하는 다양한 모습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가면이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보아 주어야 하는 부모와 동시에 아이들을 때리거나 성학대를 하는 것과 같은 완전히 상반되는 가면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 그럴 때 아동들은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때로는 잠시 자신의 자아를 몸과 분리시켜 고통을 이겨내려 하는 ‘해리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다중 인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배우 김수현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주는 모습도 혼란이다. 그 동안 보여주었던 배우의 가면들이 너무나 완벽하게 뛰어난 모습 또는 바보같이 선한 모습이었기에 그가 총, 칼을 들고 누군가를 학대하고 괴롭혔다는 사실이 대중이 가지고 있던 그의 일관성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 가면들 사이의 차이를 줄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제일 좋은 방법은 척하면서 살지 말고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나의 모습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동시에 타인에게도 그것을 적당하게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어느 날, 돈이 들어 있지 않은 헌금 봉투를 헌금함에 넣었다는 고백을 했던 적이 있다. 큰 교회 목사님께서 성도들 앞에서 그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누군가는 목사님이 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거룩한 가면을 쓰고 있는 목사님도 일반 성도처럼 죄를 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면을 벗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도 순 기능이 있음을 기억하고, 숨기거나 열등감을 가지기 보다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된 이유를 생각하며 그런 나를 긍휼히 여기며 용납할 때 나의 가면들은 통합이 되어 나 큰 하나의 자아로 성숙해 갈 수 있게 된다.  바라기는 이번 사건을 통해 배우 김수현도 결핍이 많은 자신을 화려한 가면으로만 가리지 말고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태브나와 오뚜느는 아주 특별한 몽골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은 몽골의 두 번째 도시인 다르항 (Darkhan)에 있는 YWAM (Youth with A mission)의 대표 리더인데 아주 한국말을 잘 합니다. 태브나는 한국 선교사님이 다르항 베이스의 리더였을 때 그 분을 따라다니며 통역을 하던 스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브나가 20대 중반 밖에 안되었던 어느날, 한국 선교사님께서 갑자기 몽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큰 프로젝트를 가지고 많은 일을 진행하던 한국인 리더는 몽골 정부로 부터 추방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베이스 리더의 자리를 태브나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태브나는 너무 어리고 한국으로부터의 많은 재정적 지원으로 운영되었던 베이스였기에 새로운 젊은 리더를 재정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스텝들이 떠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베이스를 테브나는 16년 동안 성실하게 운영하면서 베이스를 지켜왔고 발전시켰습니다.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을 좋아하는 아내인 오뚜느는 다른 나라로 가자고 남편에게 조른 적도 여러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테브나는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태브나는 지역 교회도 3군데를 개척해서 교회와 베이스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지역 교회의 목사님들과도 여러 행사들을 많이 운영합니다. 필자가 잠시 머무는 동안 몽골에는 설 명절이 있었습니다. 태브나는 명절을 맞이해서 몇 일동안 어른들과 아프신 분들을 방문해서 인사하는 일을 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비전센타를 추가로 세워서 중독 사역과 언어 학교를 운영하는 비젼을 가지고 자신이 일하는 교회에서 비전센터의 기반을 쌓는 일을 위해 헌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6월 에 땅을 파게 됩니다. 그의 아내인 오뚜느는  5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오뚜느는 한국에서 국어 국문학과를 공부하고 호주 기독교 대학의 상담학과를 공부해서 상담사로 몽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시청 사무소에서 오뚜느와 상담사들에게 청소년들을 위해 상담을 할 수 있는 상담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에게 상담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다르항 베이스에도 상담실을 만들어 놓았고 또 다르항 베이스에서 독립사역으로 하고 있는 유치원에도 일 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서 어린 아이들에게 상담을 제공합니다.  오뚜느는 부모로부터 보호를 잘 받지 못하는 아동과 청소년들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상담사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올 해 부터는 호주 기독교 대학의 캠퍼스를 세우고 상담학과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캠퍼스에서 만난 상담학부의 학생들은 놀라웠습니다. 이미 석사까지 심리학을 공부하신 분, 중독 사역을 하고 계신 분이 계셨고 대부분이 선교사와 교회 지도자였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천 킬로가 떨어진 곳에서 어떤 학생은 천 사백 킬로가 떨어진 곳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다르항까지 온 분도 계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섬기기 위해 오뚜느는 숙박 비용이나 식사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식사와 아주 맛있는 디저트를 제공하고 선물까지 준비해서 주었습니다. 오뚜느와  담당 스텝들은  단순히 공부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함께 제공하고 다르항 베이스의 비전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트라는 다르항  베이스에서 14년이나 장기 스텝으로 일한 선교사입니다.  제가 14년 전에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했을 때, 19살의 DTS (Disciples Training School)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스텝으로 일을 하면서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을 위한 선교사로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할 때도 북한 선교를 기뻐하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북한 선교를 위해 온 가족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다리만 건너면 북한으로 갈 수 있는 대련이라는 곳에서 5개월간 머물면서 북한 선교를 위한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들과 연계해서 기도하면서 실제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가족은 어린 두 자녀가 있는데 북한 선교를 위해 아이들은 집에서 홈 스터디로 키우면서 북한에서는 옥수수 농장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하지 못하는 북한 선교의 일을 몽골의 선교사님이 죽음을 각오하고 한다고 하는 것이 놀라웠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쉘은  눈에 띄는 다르항 베이스의 선교사입니다. 외모가 워낙 한국 사람처럼 보이고 20대 중반이어서 어떤 청년일까 궁금했습니다. 미쉘은 한국에서 12년간 있으면서 국제학교를 졸업한 청년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처럼 한국말을 잘 하고 또 영어도 아주 잘합니다.  미쉘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비올라 대학에서 IT로 학사 공부를 하고, 몽골에 돌아와서는 최고로 좋은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중앙 아시아에 선교사로 떠나기 위해서 훈련을 받고 있는 스텝으로 YWAM 다르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미셸은 울란바트라에 살고 있는 아주 특별한 부모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쉴이 대기업을 그만 두고 또 부모님을 떠나 선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모님이 지금은 크리스챤이 되어서 열심히 아들을 돕고 자신의 집을 게스트 하우스처럼 열어 놓고 몽골을 방문하는 다르항의 손님이 있으면 따뜻하게 집에서 잠을 재워주고 공항까지 데려다 주는 일을 합니다.  미쉘의 엄마는 불교였다가 아들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7일만에 성경을 두 번이나 읽었다고 합니다. 아빠는 러시아에 오랫동안 사시던 분이어서 음식 솜씨가 아주 뛰어납니다. 필자가 하루 머물게 되었을 때 본인은 금식으로 인해 음식도 못 먹으면서 아주 열심히 러시아 음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6일밖에 없었던 몽골에서의 시간이지만 몽골의 문화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로 인해 그들과 금방 정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떠나는 발걸음에 여운이 가득합니다. 어려운 중에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 모두가 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기독교 상담자들이 많이 배출되어서 몽골의 개인과 가정 그리고 […]

14년만에 몽골에 왔습니다. 인생에 2번째 몽골 방문인데,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높은 건물들도 많이 건설이 되고 있고, 한국 CU 편의점이 곳곳에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은 무엇보다 많은 열매가 있는 방문입니다. 몽골어로 저희 호주 기독교 대학 상담학과 과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시작에 46명의 학생들이 등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2011년에 꾸게 하셨던 꿈의 결실을 보게 하는 놀라운 시간입니다.  2010년 중국 북경에서 GMS 소속의 중국 지역 선교사님들 모아서 함께 가정사역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주강사로 초대되어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님들이 상담사역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제는 복음 전파 사역만이 아니라 상담과 가정사역을 통한 회복의 사역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었습니다. 사람들을 교육하고 복음으로 무장시켜도 이전의 가정으로 돌아가면 이전의 문제상태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회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 본인들이 먼저 교육을 받고 중국 현지인들에게도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2011년 몽골의 제2의 도시 다르항(Darkhan) DTS(Disciple Training School)에서 가정사역에 대한 주제로 낮에는 DTS 학교의 학생들에게 그리고 저녁에는 현지인 목회자들을 모아 놓고 가정사역 강의를 했습니다. 그 곳에서도 상담사역의 필요성을 아주 절실히 느꼈습니다. 잠시 강의 중에 쉬는 시간에도 상담 요청이 줄을 이었고, 잠깐의 상담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하는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호주가정상담대학 산하에서 한국어 학부를 담당하던 저희에게는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 새로운 언어로 개척할 수 있는 권한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 정부에 등록된 호주 기독교대학을 통해 전세계 선교지에 기독교상담자를 배출하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하나님께서는 대학 내부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던,2021년에 일본, 몽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탈북 민을 위한 선교사님들을 위한 상담학 코스를 용기를 내어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선교사 30여명이 공부하셨고, 그 중에 몽골은 몽골 현지인 선교사 4명이 공부했습니다. 그 중에 3명이 졸업하고 이 사역에 헌신하여, 학생을 모집하고 2025년 2월 3일 대학이 개강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중에 3일 걸려서 1300km 를 달려오신 사역자님도 계시고 1000km 에서 오신 3명도 있었고, 3-4 시간은 떨어진 곳에서 오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이 사역자님들이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해하고 감사하는 그 분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힘을 내게돠고 감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부분 지도자 급이고 몽골을 이끌어나가시는 분들이어서 더 […]

김새론이 세상을 떠났다고 떠들썩하다. 음주 운전으로 엄청난 질타를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세상을 떠난 새론에게는 공감과 동정을 보이며 세상이 그녀에게 너무 했다라고 말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 가장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나라다. 둘째 가라면 서러운 듯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 어쩌면 김새론에게 향한 따가운 시선이 그리고 사회적인 요구가 우리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설 자리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한국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