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이 불러온 이 시대의 재앙과 역사의 후퇴

불과 2년 전만해도 인류는 미래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IT 중심의 새로운 산업혁명, AI를 이용한 획기적 변화들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환상과 욕망으로 들떠있었다. 그러나 그 요란했던 꿈들은 삽시간에 사라졌다. 2019년 말 중국 우한 시에서 발생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러한 꿈과 교만에 먼저 대못을 박았다. AI를 앞세운 산업혁명, 유전공학, 100세 이상의 시대를 장담했던 의학이나 양자물리학 같은 최첨단 과학이 아주 작은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도전이며 과거 어떤 경제적 불황이나 생명의 위협을 뛰어넘는 팬데믹의 위험에 처했다고 탄식했다. 한편 WHO 사무총장 거브러이여수스는 초기에 중국 눈치를 보며 팬데믹 선언을 보류했고, 이런 안일한 대처가 초기 방역 실패를 가져왔다. 코로나의 정체와 발생 이유가 정치적 이유로 가려져있다. 하지만 꼭 밝혀져야 될 것들이 있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와 관련된 일들에 대한 중국의 변명과 감추기, 미국의 한 거부가 이를 지원했고 연구소의 관리 소홀로 인해 팬데믹이 발생했다고 하는 일리 있는 주장들, 중국의 큰 후원금으로 인한 WHO의 중국 눈치 보기, 팬데믹 선포를 늦춰 초기 방역에 실패한 WHO 사무총장의 비겁함, 백신을 중심으로 한 돈 벌기와 자국 이기주의 같은 일련의 이야기들은 결국 그 진실이 드러나고 심판받을 것이다. 이런 사태를 가져온 근본 이유는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인간들의 탐욕에 있었다. 지금 전 세계에 아픔과 눈물을 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도 종교적 이유를 앞세운 인간의 탐욕과 저열한 이기심의 결과이다. 탈레반의 정권에 대한 욕망,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부패와 무능, 거금을 들고 도피한 대통령, 탈레반에게 역으로 흘러간 자금들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 침투해 피아구분이 어렵게 된 상황들을 보면 탐욕의 끝을 볼 수 있다. 평화, 자유, 사랑, 인권, 상호 존중과 같은 보편적 가치는 인간의 욕망 앞에서 이렇게 무너졌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한 야고보서 1:15의 말씀이 역사의 위기에 선 인류의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우고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진정 역사를 통해 배우고 있는지 물어볼 때이다. 늘 역사적 과오가 반복돼서 전진하는 것 같으나 후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사를 후퇴하게 하는 주된 요인은 인간의 탐욕에 있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2008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왔었다. 미국 금융시스템의 불건전성과 부실로 인한 주택시장의 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게지가 그 발단이었다. 그 일차적인 책임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페드 리저브 총재 버냉키에게 있었다. 미국 의회는 1987년부터 2006년까지 근 20년간을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전 총재 알란 그린스팬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중앙은행 총재로서 왜 금융시스템의 위험성을 간과하여 이토록 위기를 키우고 방치했느냐는 준엄한 질문이었다. 그린스팬은 시장 신봉주의자 답게 금융시장이 스스로 위험을 막는 시스템을 세우고 운영할 것으로 믿었다고 답변했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금융시장의 기능은 그간 최고였고 오랜 역사 속에서 증명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의 기능을 너무 믿었던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인간의 탐욕을 생각하지 못했다라는 뼈아픈 답변을 남겼다. 그린스팬이 본 금융위기의 최대 원인은 미국의 주택시장의 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게지나 미국 전체 금융시스템의 불건전성과 부실이 아니었다. 스스로 위기를 관리하고 통제한다고 믿었던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역기능도 아니었다. 바로 인간의 탐욕이 총체적 금융위기의 발단과 원인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고 과거의 오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동일한 과오와 실수를 반복한다. 그 이유는 바로 탐욕 때문이다.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한다고 전도서 7:7에서 말하고 있다. 하박국 2:5절은 탐욕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부유한 재산은 사람을 속일 뿐이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거만하고, 탐욕을 채우느라고 쉴 날이 없다. 그러나 탐욕은 무덤과도 같아서, 그들이 스올처럼 목구멍을 넓게 벌려도, 죽음처럼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탐욕이 인간을 우매하게 하고 그로 인한 비극적인 최후의 모습을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제국들이 명멸했다. 제국의 시작은 국가 차원의 탐욕이 그 저변의 동인으로 (driving force) 작용했고, 제국이 처참하게 멸망당할 때에나 끝이 났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역사를 보며 배우지 못했다. 욕심이 이성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예수님 없이 탐욕으로 가득찬 인생은 대단해 보여도 새털처럼 가볍다. 예수님과 그의 복음으로 채울 때에 비로소 참된 가치가 부여된다. 코로나 사태와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 상황 속에서 역사의 후퇴를 본다. 가슴이 찢겨나가는 아픔이 있다. 인간들이 탐욕을 내려놓을 때 이런 재앙으로 인한 역사의 후퇴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정의가 세워지고 복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