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세상이 어지러운 중에 시드니로 돌아와 본의 아니게 안식년을 갖고 있다. 베트남으로 가는 하늘 길도 막히고 백신을 1,2차 모두 맞은 후에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 하니 이곳에 상당기간 더 머물러야 할 것 같다. 차가운 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창문을 스친다. 찬 바람이 내게 말을 걸어오면서 시드니에도 새로운 계절이 찾아 왔음을 알려준다. 세월을 피하지 못한 시유의 낙엽들이 어지러이 뒹굴고 있다. 비에 젖은 낙엽들에게서 여름의 그 도도하고 싱그러웠던 영예와 젊음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다만 묻어있는 세월의 흔적과 주어진 시간을 마감해 가는 모습이 애처롭다. 드리워진 가을의 모습에서 우리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엿본다. 세월 앞에 고개 숙인 겸손을 본다. 봄부터 키워 살을 에며 품어온 열매들을 제 몸에서 떨궈내는 아픔과 보람, 그 뒤에 숨어있는 허전함에 가슴이 시리다. 쌀쌀한 가을 바람에 옷깃이 여미어진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양팔로 가슴을 껴안는 계절이 되면 우리의 마음도 사람들을 품어 안게 된다. 이웃과 연인을 가슴으로 생각하고 아끼고 그리워하며 감싸안는 아름다운 일, 이런 것들을 사랑이라고 한다. 한 영혼의 모든 것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모든 과정은 인간의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필자의 선교 사역은 예수님의 대표적 사역이었던 가르치고 (teaching) 복음 전하고 (preaching) 구제하는 (healing) 세가지 사역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니 성령님께서 이렇게 자연스레 인도하시고 사역하게 하셨다. 먼저 구제 사역을 나눌 것인데 마약자들을 끌어안고 재활시키는 일과 그 가족들의 애환을 우선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고난의 자리, 낮은 자리로 먼저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려 한다.

이곳 H도시에는 마약중독자 10,000여명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사라진 그들은 꼭 돼지 우리의 짐승들 같다. 충혈되고 초점없는 눈으로 잠시도 집중하지 못한다. 늘 불안감에 떨며 초조하다. 구석에 머리를 박고 그 어떤 소망도 남아있지 않은 모습이다. 손과 발, 팔뚝과 종아리 모든 혈관이란 혈관엔 주사 자국이 범벅이 되어 피멍이 들고 문드러졌다. 영육간 처참한 모습 속에 사람의 모습은 더이상 없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이 사라졌기에 이들의 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사치다. 누구도 이들이 회복되어 더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들도 이들을 버렸다. 간수들은 이들을 개돼지 다루듯 한다. 이들 대부분은 10대와 20대 이다. 아름다워야 할 청년의 때에 사탄이 주는 죽음의 유혹인 흰색 가루와 아이스 같은 약물에 육신과 영혼을 도둑맞았다. 이들은 마약을 주든지 죽음을 달라고 울부짖는다.
정부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마약중독의 심각성을 알고 강력한 규제에 나섰다. 마약중독자들을 잡아 감옥에 감금하고 정상인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석방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감금만으론 중독에서 회복시킬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현지인 동역자들과 연합하여 마약중독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말씀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일단 현지인 사역자들 중에 먼저 마약재활에 성공해서 전도사로 교회와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 마약자 출신의 일꾼들을 앞세워 재활을 돕고 함께 운영하도록 했다. 재활센터 여러 곳을 마련하고 재활을 돕기 시작했다. 한 곳에서 돌보면 좋겠지만 마약 재활자들을 섬세하게 돌보기 위해 작은 처소 여러 곳에서 돕는 것이 더 나았다. 마약으로 삶을 포기한 이들을 데려와 재활에 들어갔다. 거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시작되었다. 죽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던 본인들과 가족들이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됐고 주안에서 새로운 인생이 열리기 시작했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