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한다는 참 의미는?

베트남은 110여 년의 개신교 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초기 선교의 극심한 어려움으로 복음전파가 잘 이뤄지지 못했다.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인 20세기 초기 프랑스 정부와 카톨릭 교단의 선교 방해, 베트남의 치열했던 국내외 정세 등을 그 이유로 본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개신교 선교사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복음전파가 많이 이루어졌다. 9,700만 명의 인구 중 약 1.2%에 해당하는 120여만 명의 개신교인들이 생겨났다. 베트남에선 복음을 전파하면 믿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하여 처벌의 대상이 된다. 각 개인의 종교 활동을 허용한다고 하지만 모든 전도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여기에 모순과 갈등이 존재한다. 복음을 들어봐야 참된 구원의 길임을 깨닫고 믿음을 갖던지 할 텐데 전도 자체가 법을 어기는 것이기에 전도가 어렵고 선교사들의 추방사유가 된다. 내국인들도 신분증에 종교를 반드시 표시해서 교회 출석 이유를 법적으로 허락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면 공무원, 군인, 경찰, 공산당원 등으로 진출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1백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의 숫자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인임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시인하는 일이 한국이나 호주처럼 열린사회보다 이곳이 훨씬 더 힘들고 고되다. 열려있는 사회일지라도 주변의 압박이나 조롱으로 소극적 수동적 신앙생활을 하기 쉽지 않은가?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내 아버지 앞에서 나도 너를 시인하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너를 부인하겠다(마10:32-33)”. 이 말씀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라는 것인데 시인한다는 말의 참 뜻은 무엇일까? 내가 그분이 구주이심을 믿고 동의하면 되는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시인한다는 말은 삶의 4가지 영역에서 분명히 외부적으로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예수님 편에 서야 함을 뜻한다. 첫째는 개인의 삶 속에서 다양한 핍박을 이겨내야 한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동료들의 압박이라든지, 가정에서의 제사문제와 우상숭배, 여러 유교적 관습 속에서 믿음의 길을 선택하고 그 이유를 당당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정의롭지 못한 공권력이나 사회로 부터 교회 존립에 해를 끼치는 박해가 왔을 때 이를 견뎌내는 것이다. 분명히 아니라고 말하고 적극적으로 예수님 편에 서서 교회와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셋째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추구할 때 그것이 믿음의 길과 충돌하면 기꺼이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세상적인 욕망이 예수님과 충돌했을 때 세상 것을 버리고 주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넷째 영역은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과 복음을 정직하게 나타내야 한다. 수많은 이단들, 동성애와 동성결혼, 진화론, 종교다원주의와 같은 시류의 사상과 세속적인 가치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막강한 권력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정직하게 복음의 진리와 가치를 전하는 것이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다. 역으로 위의 4가지 영역에서 예수님 편에 서지 못하고 복음의 진리를 정직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믿음 없는 자가 된다. 그러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당신을 부인하실 것이다.

그렇다, 위와 같은 4가지의 삶의 영역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우리는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시인함으로 구원받는다, 이것이 은혜이다. 믿음은 행위나 공로로 구원받을 만한 조건을 찾거나 하나님을 움직이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의와 사랑을 믿으면 죄 없다 하시고 의롭다 여겨주신다. 믿음은 이미 주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더 큰 은혜를 얻어내려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오해이며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요16:9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면서 인간의 악한 행위가 아닌 믿음을 추궁하셨다. 죄의 뿌리와 출발점이 믿지 않는 것이기에 지옥에 가는 유일한 이유는 불신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회개로 인도된다. 믿음이 회개의 자리로 나오게 한다. 회개는 죄를 깨달은 즉시 빛 되신 예수님 앞에 나오는 행위이며 구원의 증거이자 예수님을 진정한 구주로 시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죄책감이나 한숨과 눈물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죄에 대한 탄식과 눈물은 회개할 때 나타나는 현상일 뿐 본질이 아니다. 회개의 본질과 완성은 주님 앞에 나아와 죄용서 받고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 죄 중에 거하면 죄의 노예로서 참 자유가 없고 속박과 조종과 죄의 지배 속에서 농락당한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는 것이기에 빛 되신 예수님께 나아와 용서를 체험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회개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자의 모습이다. 회개를 delay 하지 말라. 지금 즉시 회개의 자리, 곧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그 분을 진정으로 시인하여 구원받는 백성이 되길 바란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