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의 어깨 위에서

아이작 뉴턴은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Principia 1687년 발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로 고전역학과 만유인력의 기본 바탕을 제시했다. 세계 과학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이 책의 저자인 46세의 천재 과학자 뉴턴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와 만유인력 같은 위대한 발견을 설명한 프린키피아를 저술할 수 있었습니까?”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통찰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선배들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업적이 위대한 선배들의 선행연구 위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겸손히 대답했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요, 과학자요 우주학자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그에게서 나타나는 선배에 대한 존경심과 겸손이 아름답다. 그가 보여주었던 겸손을 나타낸 ‘선배들의 어깨 위에서’라는 말은 그가 발견한 만유인력만큼이나 유명하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영국의 거부 핼리가 뉴턴의 논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판한 책으로서 과학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이다. 오랫동안 신비하고 경이로운 대상이기만 했던 천체의 운동이 수학적으로 정확히 예견할 수 있는 과학의 한 분야가 될 수 있게 해주었다. 프린키피아는 당대의 우주관을 대표하는 논문이 되었고, 유럽인들의 사고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 논문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혜성의 출현을 큰 재앙의 징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혜성이 나타나면 나라의 큰 인물이 죽거나, 큰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공포에 떨었다.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우주관 속에서 혜성의 출몰은 큰 일로 받아들여졌다. 혜성의 출현으로 역사가 바뀐 사례들도 많았었다. 1066년 영국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혜성이 나타났을 때 해럴드 왕이 이끌던 색슨족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진군을 멈추었고, 그 사이에 윌리엄의 군대가 진격하여 영국을 장악하고 국가체계를 갖추었다.  

그런데 1066년에 나타났던 바로 그 혜성이 600여 년이 지난 1682년 다시 나타나 온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커다란 혜성을 바라보며 도대체 왜 나타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두려워하고 궁금해했다. 핼리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이자 큰 부자였는데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을 찾아가 혜성의 운동을 관장하는 힘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때 뉴턴은 주저하지 않고 “혜성에 작용하는 힘은 태양으로 부터 멀어질수록 약해진다. 즉 거리의 역제곱에 의해 비례하는 힘의 영향을 받아 타원궤도를 돌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발견한 중력의 법칙을 적용해 혜성의 주기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이 정확하고 자신에 찬 설명을 들은 핼리는 경악했다. 크게 고무된 그는 곧바로 거금을 들여 뉴턴의 논문 프린키피아를 출판했다. 그리고 과거의 기록을 모두 뒤져 1066년, 1531년, 1607년, 1682년에 나타난 혜성이 모두 같은 혜성이었으며, 1758년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결국 1758년 성탄절에 그 혜성이 나타났으며 사람들은 이것을 예언한 핼리의 이름을 따서 그 유명한 핼리혜성이라고 불렀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나 천체 운동에 대한 핼리의 관심과 열정은 위대했다. 그러나 천재 과학자 뉴턴이 보여주었던 겸손은 더 멋지고 아름답다. 이 시대는 존경의 대상이 없는 시대이다. 누구도 존경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기 식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극도의 개인주의 시대이다. 특히 필자가 경험했던 호주 이민사회와 선교지는 한국의 경우보다 좀 더 심하다고 생각된다. 롤모델이나 존경의 대상이 없다. 필자는 40여 년 전에 호주로 이민 와서 시드니에 정착했다. 이민 초기 먼저 와서 자리 잡은 이민 선배들의 도움과 조언이 없었다면 우리 가정은 훨씬 더 어려운 정착의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당시 한인사회의 규모는 미미했지만 선배들의 어깨 위에서 호주사회를 바라볼 수 있었고, 어려운 이민생활에 적응하고 눈을 뜰 수 있었다.  

필자는 지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호주를 떠나 가난하고 질병이 많은 베트남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산골과 농촌과 도회지에서 그 곳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섬기고 주님이 바라보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함께 바라보고 있다. 해가 저무는 늦은 오후에 하나님의 포도원 일꾼으로 불림 받은 무익한 자로서 현지 선배들의 어깨가 필요했다. 선교사로서 늦은 출발이었지만 지난 10여 년간 현장에서 미력하나마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배들의 어깨 위에서 좀 더 멀리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선배들의 어깨 위에서 멀리 보게 하시고 일하게 해주셨다. 이 시대에도 뉴턴의 겸손과 배려가 필요하다. 선배들은 후배들이 올라서도록 어깨를 내어주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어깨 위에서 더욱 멀리 높이 볼 수 있기 바란다. 선배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겸손과 존중과 협력을 보고 싶다. 세대 간의 갈등은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성숙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교회 안에서 신앙의 선배들과 후배들 사이에 이러한 고백과 감사가 살아난다면 세계복음화에 더 아름답게 쓰임 받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