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선교지 이야기 – 더불어 산다는 것은

베트남이 위치한 곳은 역사적으로 인도 문명과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왔고 두 문명이 공존해 왔기에 이 지역을 인도차이나 반도라고 부른다. 이 지역에서 9,700만 명이라는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인 베트남은 인종과 문화가 다양하다. 전체 인구의 85%를 이루는 주종족인 비엣 족과 (Viet/Kinh) 53개의 소수 민족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 총 54개 민족들은 언어, 문화, 식생활, 전통, 종교 등 살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54개의 종족 분류도 비슷한 종족별로 대분류한 것이어서 실제 종족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한 종족 내에도 3-4개, 많게는 8개 정도로 세분되기도 한다. 이들은 언어와 풍습이 완전히 다른 민족이다. 그러나 상호존중을 통해 한 지역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고, 문화의 경계를 인정하며 살아간다. 다른 종족간의 갈등과 불편함을 극복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냈다. 코로나 시대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일고 있는 아시안인 혐오와 무차별 공격을 보면서 선진 서구문명 속에 숨겨진 저급함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특이한 점은 같은 산자락인데 계곡과 언덕 따라 형성된 마을들이 각기 다른 종족의 터전인 경우도 많다. 좁은 지역을 공유하며 살아가지만 언어와 풍습이 완전히 다른 민족들이다. 그러나 상호 존중과 인정을 통해 한 지역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고대 앗수르 제국이 강제 혼혈방식의 계급을 전제로 민족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헬라는 수평적 세계동포주의적 코스모폴리탄 융합을 통해 민족의 경계를 해체하려 했다. 그리스 철학과 동방 문화의 융합, 마케도니아 군인들과 페르시아 여인들과의 혼인을 통해 민족적 동등을 꾀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시도는 실패했다. 하나님께서 각 민족을 구별해 놓으셨기에 이 독특성을 존중하고 거주의 경계를 인정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세계경영의 내용일 것이다. 이곳 베트남 사람들은 54개 민족이 상호인정과 존중 속에서 살아간다. 한국은 오천년 단일 민족임을 자랑하지만 타민족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타민족은커녕 같은 공동체 내에서도 이념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을 서로 욕하고 보복하는 실정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고 우리와 다름을 인정해 주는 성숙한 세계시민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지금 한국에서는 베트남 엄마를 둔 자녀들이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베트남에 종종 전해진다. 자녀들이 엄마 때문에 왕따의 대상이고 대인 기피증을 보이며 엄마를 부끄러워해서 제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나타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쩌다가 한국의 아이들이 엄마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나라가 됐는가? 스무 살 어린 신부가 아버지 또래의 4-50세 농촌 남편을 믿고 코리언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왔다. 그러나 찢어지게 가난하고 힘든 노동에 몸이 쪼그라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생겨난 자식 때문에 참고 살려고 했다. 그리고 지속되는 사회적 멸시 때문에 본국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들에게 한국은 더 이상 동경의 나라가 아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한국에서는 왜 동남아에서 온 엄마와 그 자식들이 멸시의 대상이 됐을까? 혹시 좀 더 가졌고 우월한 민족이라는 생각 때문이라면 그런 이유로 다른 민족을 짓밟고 무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민족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사랑과 자유라는 가치를 150여 년간 치열하게 추구해 왔다.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과의 숱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마침내 통일국가를 이루었고,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며 살아갈 권리와 자유를 얻어냈다. 자유와 사랑은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이 목숨을 걸고 추구해 온 가치였고, 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낸 존경받을 만한 민족이다. 우리 고국에서 타민족을 좀 더 성숙하게 대하고 존중하고 더불어 살 수 있길 소망한다. 타 민족에게 배타적이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교만한 민족은 망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개인이나 단체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일상의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며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말씀 안에서 답을 찾아낸 사람이라면 이웃을 대하고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자신의 혜택만을 추구하고 유익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해영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소유하고 가진 것에 안주하는 자아 중심적 비복음적 영성에서 속히 벗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