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눈물과 치욕을 이겨낸 자유인들

누구에게나 속박은 싫다. 우리의 삶이 어떤 큰 힘에 의해 억압당할 때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선교지인 이곳 베트남도 예외가 아니다. 54개 민족, 인구 9,800여 만의 복잡한 나라인데 19, 20세기는 이들에게 수난의 시기였다. 특히 프랑스 식민 통치와 일본의 제국주의, 미국의 패권주의로 인해 자신들의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겼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를 위해 치열하고 끈질기게 투쟁했다. 소유물을 빼앗겼고 프랑스 군인들의 군영에서 여인들이 낮엔 빨래하고 밥 짓고 밤엔 성적노예가 됐다. 굴욕적인 삶이었다. 남자들은 군인들의 총을 피해 동굴 속에서 생명을 연장하며 독립을 꿈꿨다. 발각된 동굴엔 여지없이 프랑스 군인들의 수류탄 세례가 퍼부어졌다. 여자들이 농사를 지으며 중노동과 치욕과 눈물 속에서 어린 자녀들을 키워냈다.  

1954년, 마침내 치욕의 역사를 끝내고 주권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단판 승부를 맞이했다. 프랑스 정규군과 베트남 독립군들의 마지막 승부처가 서북부 소도시 DPB로 정해졌다. 누가 하늘이고 땅인지 이 전투로 결정되게 되었다. 흥망이 걸린 마지막 단판 승부처였다. 고대 세계사의 분수령이었고 국제적 힘의 균형을 깨뜨린 이집트 아수르의 동맹군과 바벨론의 전투 같은 건곤일척의 승부처였다. 이 전투에서 베트남은 민간인 수준의 병력과 낙후된 무기를 가지고 현대 무기와 정규군으로 무장한 막강 프랑스 대군을 완파했다. 외곽 포위와 보급로 차단, 활주로 파괴 및 기습 등의 전술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95년간의 지긋지긋한 식민지란 쇠사슬을 끊어내고 자유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유라는 것은 결국 피와 목숨과 바꿔야만 얻어지는 것인가? “사랑, 너를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자유 너를 위해 그 사랑을 바치리라” 이 예사롭지 않은 고백은 어느 탈북 시인이 탈출하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쓴 시구다. 벼랑 위의 치열한 순간에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사랑과 자유였다. 배고픔과 추위로 힘들었을 텐데, 꼭 살아남고 싶었을 텐데 그는 무엇보다 사랑과 자유를 마음에 품었다. 그의 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시드니나 한국처럼 북한보다 살기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은 아마도 좋은 집, 차, 직장, 대학, 부자가 되는 일이 아닐까? 이 시대 우리들의 가치관이 이 시인의 사랑과 자유라는 가치 앞에서 초라해 보인다. 이곳 베트남 사람들도 지난 150여 년간을 사랑과 자유를 위해 싸워왔다. 프랑스의 식민 사슬을 끊어냈다. 온 땅과 국민들을 죽음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통일을 이뤄냈다.  

비록 공산주의 체제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주권과 영토와 국민을 가진 자랑스러운 통일국가가 되었다. 지금 비록 가난하지만 이들이 이뤄낸 통일국가라는 점은 부럽다. 삶의 터전과 얼굴에서 그들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더러운 골목길, 쓰러져 가는 오두막 집, 작고 냄새나고 새까만 사람들의 얼굴엔 피의 역사와 업적이 보인다. 도시의 더러운 뒷골목과 쭈그리고 앉은 노인의 눈에서 나라와 자유를 되찾아낸 자존감이 보인다.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기 위해 싸워왔던 치열한 흔적들과 인고의 시간들이 마을 어귀마다 골목마다 곳곳에 서려있다. 산속 소수민족 지역 구석구석에도 치열하게 견디며 싸워왔던 위대한 민족의 기상이 숨겨져 있다. 그 고난과 굴욕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놓지 않고 추구했던 핵심 가치는 사랑과 자유였다. 그리고 그 가치를 마음껏 소유하고 누리는 행복을 지금 갖고 있다.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다가가지 않을 수 없다. 복음을 통해 이 민족이 진정한 영적 자유와 사랑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