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오르면 피안의 世界이던 구름이 이웃이 되고 항상 곁에 있던 나무며 바위며 친근했던 지표가 먼 세계가 된다. 가깝지 않음이 주는 객관이 지표의 오물에게도 아름다움을 준다.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보면 꽃이나 나무나 오물이나 차이가 없다. 먼빛에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우리는 가까워짐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과 만나며 더러움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는가. 멀어짐으로 얼마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가 그 많은 他人의 속살들이.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있던 자리에서 멀리 떠나보면 힘들었던 일상과 이웃들이 더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다. 멀어짐으로 가까워지는 역설이다. 베트남의 산속 광야생활을 하니 떠나온 곳이 자주 그리워진다. 별것 아닌 일상도, 예전에 다니던 동네 어귀 허름한 찻집도 그립다. 군에 다녀온 남자들은 비슷한 경험이 있어 공감할 것이다. 부대 안에선 늘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먹고 싶은 게 많다. 떠나온 곳과 그 곳의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래서 휴가 나가면 만날 사람, 가보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들을 적어 놓기도 했다. 필자가 초기에 사역했던 곳이 베트남의 깊은 산악지대 소수민족 마을이었기에 카페나 수퍼마켓은 고사하고 그 흔한 중국집 하나 없었다. 그래서 시외버스를 타고 10 시간 걸려 대도시에 나오면 꼭 카페에 들러 라때 한잔하며 추억에 잠기곤 했다. 산속엔 라때가 없다. 별것 아닌 것을 그리워했었는데 이런 것이 멀어짐이 주는 가까워짐의 역설이 아닐까 한다. 삶과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곳 사람들을 품어 안고 살아가기가 이래저래 쉽지 않았다.
이 시대는 Covid-19로 온 세상이 병들어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병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삶, 존재 방식, 정신세계까지 병들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된다. 세상이 우리를 밀어내다. 서로에게서 멀어지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거리 두라고 한다. 오프라인 활동은 날마다 축소되고 온라인 활동이 권장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줄 수가(롬12:15)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질서한 미디어의 콘텐츠 안에서 갈 길을 잃고 지식의 무정부 상태에서 방황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선명해지려면 미디어로 부터의 자발적인 고립과 하나님과의 독대의 시간을 늘려 내 안의 소중한 가치에 집중하는 영적인 각성이 절실하다.

필자가 사역하는 지역은 공산권이기에 늘 사람들의 주목과 감시를 받아 왔다. 특히 산골에서 살 때는 이웃들이 우리의 동태를 일일이 주민 반장에게 보고하고 반장은 공안에게 보고했다. 출장을 다녀오면 몇 일간 집을 비웠는지 정확히 날짜를 계산에서 우리와 확인한 후에 반장과 공안에게 보고한다. 유리로 된 어항 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사는 금붕어 같다. 그래도 이들의 속마음은 따뜻하고 순수해서 우리를 무척 반겨하고 귀하게 여겨준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도 가져오고, 길가에서 여러 명이 쪼그리고 앉아 메뚜기나 개구리 같은 것 구어 먹을 때 굳이 불러서 같이 먹자고 한다. 가끔씩 닭도 삶아오고 계란도 쪄온다. 정이 들면 사상과 체제를 넘어 하나가 된다.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우리 안의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도 되심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전인격적으로 증거하고 복음의 시각적 모델로 살아야만 복음 전파가 가능해진다. 우리의 삶과 행동이 우리의 말보다 먼저 크게 외치고 있었다.
이곳 산지에 오면 거짓말처럼 만나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베트남 북서쪽 라오스와 중국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지역, 깊은 산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산자락에 매일 매일 풀어놓는 그들의 삶의 내용들은 슬프도록 보잘것없지만 가슴 저리게 아름다워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들이 들고 있는 옥수수 한 자루에서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의 우리의 모습을 본다. 그 시절 우리 손에 들려졌던 감자 한 개와 옥수수 한 개가 우리에게 큰 위안이자 소망이었으나 한 번도 그 시절 우리 자신의 모습을 우습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손에 쥔 옥수수 한 자루에 담겨있는 소박한 소망이 그토록 귀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제 이들의 손에 성경이 쥐어지고 가난하고 꾀죄죄하게 보이는 그들과 함께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사는 저 산비탈 언덕에 작은 교회 하나 세워져 주님의 큰 기쁨이 되고 있다. 그렇다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큰 축복이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