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은 아무데서나 자라지만 아무렇게 살지는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위해 주어진 시간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그네 인생길에서 내가 살아가는 삶의 시간으로, 또한 내가 써가야 할 역사의 한 페이지로 새로운 하루하루가 주어진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이며 축복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이름 없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70억의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 중요성을 미미하게 느끼거나 체념적일 수 있다. 산이나 들에서 아무데나 피어있는 들꽃들도 이와 같아서, 그 많은 종류의 반짝이는 꽃들을 우리는 그냥 들꽃이라 부른다. 오솔길에서, 바위틈에서, 길가에서, 가시덤불 속에서, 넓은 들판에서, 벼랑 위에서, 비탈길에서 혹은 외로운 언덕에서 들꽃들은 피어나지만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취급되기 쉽다. 그런데 한 시인이 이런 들꽃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들꽃들의 자존심을 살려주었다. “들꽃은 아무데서나 자라지만 아무렇게 살지는 않는다”라는 간결하면서도 멋진 시구가 그것이다. 이름 없는 들꽃들도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가슴이 펴지고 발걸음에 힘이 생긴다. 들꽃이나 잡초 같이 익명으로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세상은 소시민 혹은 이름 없는 자들이라 부른다. 특별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없는 것이 아무데나 이름 없이 핀 들꽃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치열한 이민자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들꽃이나 풀 한포기 처럼 아무데서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온 세상이 코로나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한 위기의 시대 한 가운데서 말이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2021년도 코로나 와중에서 절반 가까이 지났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싸워가는 Covid-19의 고난 속에서도 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어떻게 써가야 할까를 고민하며 우리 안에 품은 가치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이나 민족, 국가 혹은 하나의 대상을 가슴에 품어 생각하고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 사랑의 대상을 뜨거운 마음으로 감싸 안는 일, 이런 아름다운 것을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한다. 한 영혼의 모든 것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인간의 모든 행위 중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이런 사랑의 행위가 있는 한 우리는 아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수줍은 들꽃하나 어딘가에 외로이 살아남아 예쁜 꽃 한 송이 피워내 그 존재를 드러냈다면, 이름 없는 소시민인 우리들이 세상을 품어 안는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길이다. 내 삶에 주어진 시간들을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랑을 나누며 이웃을 뜨겁게 품어 안는 일이리라. 그것이 아름다운 삶의 꽃 한 송이가 아닐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유행가의 대부분도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과 관계없는 노래 가사는 찾기도 어렵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도 바로 사랑이란 것이다. 많은 종교의 주제나 목표가 무념, 무상, 버림, 득도, 공허, 의, 덕, 공경, 기복, 도예, 내세 등과 같이 자기중심성이 많은 반면,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가 사랑이고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라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 사람들 간의 사랑의 이야기들이 성경에 가득하다. 특히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정의는 참으로 모든 사랑의 정의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런 사랑을 간직하고 실천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이 벼랑 위에 핀 들꽃만은 하지 않을까. 

온 세계가 보이지 않는 적 코로나와 싸우고 있지만 우리의 가슴에 사랑이 찾아오면 좋겠다. 사랑의 대상이 한 국가나 민족 혹은 한 개인이거나 자연일 수 있다. 사랑의 대상을 품어 안는 일에는 아픈  상처와 힘들고 낙심되는 일들이 수반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품어야 할 대상과 그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불꽃같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우리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것으로 한송이 들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데서나 자라지만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 그래서 외로운 언덕이나 텅 빈 들에서, 혹은 치열한 벼랑위에서 아름다운  삶의 꽃 하나 피워낼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별 것 아닌데 가까이 다가가 말 걸어 보면 새롭고 아름다운 들꽃 같은 그런 인생 말이다. 위타위기와 (爲他爲己 남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 일등능제암천년의 (一燈能除暗千年 등 하나로 천년을 밝힘) 정신이 모든 사람의 가슴에 들꽃 한 송이로 피어나길 소망한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