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선교의 이중성

우리는 흔히 이중적이라고 하면 나쁘게 본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 이중인격이 연상된다. 지탄받는 부패한 지도자들이나 타락한 성직자들을 이중인격자라고 욕한다. 그러나 교회와 선교의 이중성은 이런 통념과는 다른 거룩한 이중성이다. 선교사역이 갖는 거룩성과 세속성을 뜻하는데 나쁜 의미의 세속성이 아닌 거룩한 세속성이다. 세상 대부분의 조직과 동우회, 회사나 각종 다양한 모임들은 소속 회원들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반대로 교회와 선교는 비회원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 밖의 비회원들을 복음으로 섬기는 사명이 선교이고 이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주신 것이다. 교회에는 세상에서 구별되어 나온 성도의 거룩성이 있다, 그리고 아직 불림 받지 못한 비회원들을 섬기러 세상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세속성도 있다. 이것이 교회의 이중성이다.

교회에 주어진 거룩성은 에클레시아이다. 세상으로 부터 불려져 하나님께 속하게 된 거룩한 백성들의 모습이다.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성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고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성경적 가치관을 따르고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모임이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거룩해야 하고 그 거룩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반면에 세속성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세례주고 봉사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으로 다시 보내지는 직무이다. 세상의 비회원들을 위해 복음의 가치를 나눠주는 세상 속의 교회, 이것이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거룩한 이중성이자 존재 목적이다.

그런데 교회가 교회 안에서 거룩성만 추구한다면 어떨까, 교회 역사에서 세상과 격리되어 거룩함을 유지하려 했던 시도가 많았다. 수도원과 신앙촌, 미국의 어떤 기도원과 같은 것들이다. 모두 귀하지만 복음으로 세상을 섬겨야 할 교회가 세상에 무관심하고 공동체의 거룩성에만 만족하고 그것이 지고의 신앙목표이고 살아가는 방식이자 존재 이유라면 교회로 불러내신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있다. 세상을 거부하고 등을 돌리며 사는 거룩성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교회 내에서의 교제는 따뜻한데 세상을 향해서는 무관심하고 귀를 막고 냉담하다면 현실 세계에 대한 도피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현실의 역사 밖으로 몰아내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재림의 약속과 경고만 주시고 심판의 날만 기다리시지 않는다. 지금도 세상을 향한 계획을 갖고 친히 주관하시고 운행하신다.

반대로 세속성만 강조해도 큰 문제이다. 사회 참여와 봉사 활동만 강조하면 자칫 세상의 가치관과 규범에 동화되기 쉽다. 거룩성의 상실과 세상과 구분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쉽다.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없어 조소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다 (겔36:20-24). 그래서 교회의 거룩성과 거룩한 세속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사회 구조나 정치에 대한 영향력이 아니라 주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한 성도 개개인에 대한 영향력이다. 각 성도 개인의 변화와 새롭게 됨의 합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이고 이것이 교회의 부흥으로 연결된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의 결과가 부흥이다. 흔히들 세상이 교회를 버렸다고 하면서 선교와 전도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교회를 버리기 전에 교회가 세상을 먼저 버렸다. 초월적 가치인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는 거룩한 세속성을 상실한 것이 세상을 먼저 버린 것이다. 그래서 세상도 더 이상 교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시대는 사회 구조적 변화보다 영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이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 즉 세상적 가치를 초월하는 복음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갈망한다.

세상과 다른 가치, 다른 문화, 세상과 구별된 복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복음으로 이웃들에게 다가가면 관계의 불편이 야기될 수 있지만 거기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교회가 이렇게 전도하고 선교함으로 거룩한 이중성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손에 흙을 묻히고 세상의 고통에 참여하고 사랑하고 감싸주는 주님의 구원 사역에 쓰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선교와 전도는 교회의 지속적인 충성이자 회심이고 그리스도 사역과 메시지의 지속이다. 교회의 정체성은 선교함으로 그 정체성이 확인되고 증명된다. 세상을 섬기는 거룩한 이중성을 지닌 성도들의 삶의 결과가 교회의 부흥이고 교회는 다시 선교에 재사용돼야 한다.

마5:13-16에서 소금과 빛의 비유는 교회가 세상 속에 있으나 거기에 동화되거나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로 가르치신 것이다. 너희는 빛이고 소금이라 했다. 빛과 어둠, 소금과 부패됨은 서로 상반된다. 두 사회, 즉 교회와 세상이 다르지만 그러나 다른 상태 그대로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빛은 어둠으로 비춰져야 하고, 소금은 음식 속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 유익하고 주어진 역할과 존재 목적이 달성된다. 이처럼 교회도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것이 교회의 이중성이고 거룩한 세속성이다. 교회는 세상 대부분의 클럽이나 조직처럼 회원의 유익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의 비회원들인 세상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부르심의 거룩성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되 그들의 일부가 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증거자가 되는 거룩한 이중성을 회복할 수 있길 바란다.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